[문화칼럼/신정아]‘동글동글과 납작 사이’의 한국美

  • 입력 2006년 3월 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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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동화 작가인 영국의 존 버닝햄이 서울에 처음 내한했을 때, 그는 한국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은 아주 납작(flat)하고, 중국 사람들은 동글동글(round)한 데 비해 한국 사람들은 뾰족한지, 아니면…?

며칠간의 서울 일정을 끝낸 작가는 “한국 사람은 ‘동글동글과 납작 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모나지 않고 아주 적당하지만, 흰색도 아니고 검정도 아닌 회색에 가까우며,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흐릿하지도 않은, 그렇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면이 넘치는, 어쩌면 납작한 일본과 동글동글한 중국, 그 사이에서 아주 실속 있는 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단다. 그의 표현이 재미있었지만 정확한 지적에 순간 움찔하기도 했다.

얼마 전 뉴욕에 다녀왔다. 머무르는 기간이 마침 밸런타인데이 직전이어서 뉴욕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여성이 남자친구에게서 가장 받고 싶은 밸런타인 선물은?’ 필자는 반지나 목걸이 등의 보석류나 속옷, 초콜릿 등의 선물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섹스’였다. 분주한 현대의 도시생활 속에서 물질적인 것보다는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뜻으로 읽혔다. 여러 문화가 섞인 혼성 문화 도시, 다국적 도시인 뉴욕이라는 지역적인 점도 반영됐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사회의 자유롭고 솔직한 의사 표현이 발칙하고,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을 뻥 뚫리게 하였다. 또한 지극히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아직 우리에게 나눌 수 있는 감정과 사랑이 있다는 것에 나는 또 한번 진지해질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혹시 우리나라는 어떤가 찾아보았다. 나는 또 한번 놀라게 되었는데, 같은 질문에 대해 속옷도, 보석도, 섹스도 아닌 ‘상품권’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꼽혔다.

필자가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특징이 뭐냐”고 물어올 때 참으로 난감해진다. 왜냐하면 한국 현대미술은 ‘동글동글과 납작의 사이’쯤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기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광기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적이지도 않다. 뚜렷한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화롭고 소박하며 낙천적이다. 다만 경향적으로는 예술의 뿌리인 유럽보다는,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국의 흘러가는 물줄기 위에 떠 있다.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은 ‘선’과 ‘형’에 있다고 더러는 말한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다른 나라 미술과 어떤 뚜렷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흰색을 가장 좋아했다. 그것은 꾸미지 않은 천연미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연유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더 앞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나 세련미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는다. 예술은 순수함이나 자연미만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어서 그것을 잘 포장하고 각색해야 우리들 가슴속으로 파고들어와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꾸밈없는 성격으로, 지극히 인간적이고 순수한 그 무엇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급변하는 서양미술을 우리 나름대로의 색깔로 만들어 왔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물줄기를 스스로 찾아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질 때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옛것을 모범으로 새것을 창안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정체성’ 있는 한국 미술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다.

신정아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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