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종수]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의 책임

  • 입력 2004년 9월 24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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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둘째 주에는 전 세계 책 및 각종 콘텐츠 관련 비즈니스맨들이 독일로 모여들면서 서울 코엑스 태평양관의 20배 규모의 초대형 견본시장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열린다. 최근까지 세계 도서저작권 거래의 70%가 여기서 이뤄졌을 정도로 그 규모와 권위는 독보적이다. 미국, 일본을 포함해 어떤 나라의 국제도서전도 이와 양적, 질적으로 비교가 안 된다. 또 책 잡지 신문 방송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과 디지털미디어 등 온갖 매체와 콘텐츠, 그리고 그 제작 기술의 산 교육장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와 지식인들이 강조하는 지식 정보 콘텐츠의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전시회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 정보 문화의 플랫폼이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주빈국(Guest of honor) 전시를 내년 가을에 하게 돼 있다.

하지만 1년밖에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보면, 국제적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마저 든다. ‘어떻든 성공하게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 않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주빈국 행사에 드는 엄청난 예산의 반을 민간 부문에서 확보하려는 계획이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우리는 세계 7대 출판대국이라 자랑해 왔지만 핵심시장에서의 ‘1년 후 기회’에 대해 민간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관련업계도, 스폰서 후보들도 장사와 투자의 전망을 세우지 못한다. 조직위의 설득과 홍보가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식 정보 문화 콘텐츠 강국을 만들겠다는 정책 의지를 수차 밝힌 정부가 정책적으로라도 책임져야 한다. 주빈국 신청을 정부와 함께 주도했던 업계도 분명 반성하고 노력해야겠지만 정부가 나서 1993년 ‘책의 해’ 성공의 역량부터 흡수해 조직위를 강화하고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의 기운을 유럽의 심장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 마침 베를린시는 내년을 한국의 해로 정했고 붐을 조성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오늘의 근대문명을 만든 것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라고 서양인들은 확신한다. 따라서 한민족이 먼저 금속활자를 만들고 사용했다는 사실에 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디지털 인쇄술은 그들이 먼저 했지만 활용은 우리가 그들에 못지않다. 초고속통신망 활용 1위의 나라가 그들을 대상으로 뻗어나갈 일은 많다. 예컨대 삼성의 반도체, 모니터 기술은 전자책 시대 하드웨어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삼성은 ‘애니콜 신화’ 이상의 신화를 전자책 분야에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책과 미디어, 정보기술(IT) 관련 당국의 전문가들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이 주빈국 행사는 그 자체가 국가홍보사업으로 충분한 효과가 있는 만큼 정부는 ‘무조건 성공’의 배수진을 쳐야 한다.

필자는 포르투갈이 주빈국이었을 때 그들의 포르토 와인과 멋있는 관광지들에 대해 알게 됐고, 아일랜드의 해에는 조너선 스위프트 등 영국인으로만 알았던 작가들이 ‘몽땅’ 아일랜드 출신인 것을 확인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주빈국 행사는 나라의 책 문화만이 아니라 춤 음식 스포츠 자동차 관광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강한 인상을 독일과 유럽,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흘려보내고 나중에 가슴을 칠 것인가. 그 선택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김종수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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