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조성기/물음표(?)가 된 느낌표(!)

  • 입력 2002년 11월 8일 17시 48분


오랜만에 경복궁 돌담길 은행나무 낙엽들을 밟으며 사간동에 위치한 화랑 전시회들을 둘러보았다. 대개 현대 한국 화가들의 추상화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어떤 화가는 붓보다 매스킹 테이프와 손가락으로 하늘 전체를 캔버스로 삼은 듯 광대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고, 어떤 화가는 창문의 틀처럼 네모로 분할된 자신의 의식을 요리조리 짜맞추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또 어떤 화가는 맑은 물 속에 있는 사물들인 양 약간 이지러진 타원구들을 정갈하게 캔버스에 얹어놓기도 했다.

▼묵은책만 추천하는 방송프로▼

무의식의 덩어리 같은 그것들은 투명하면서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언제라도 캔버스에서 흘러내릴 것도 같고, 공중으로 부양할 것도 같았다. 어떤 도발적인 화가는 거대한 꽃의 이미지를 만다라 형태로 거의 원색에 가깝게 캔버스에 가득 채워 자신의 분열되는 의식을 어찌해서든 통합하려는 열망을 나타내고 있었다.

한지(韓紙)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세계를 펼치고 있는 화가, 한국 전통의 조각보 이미지를 다양한 형태로 현대화한 듯한 화가, 담벼락의 낙서 같은 그림에서도 어딘지 쓸쓸한 실존의 그늘이 배어나도록 하는 화가 등등. 여러 화가들의 고집스럽고 진지한 작업들을 접하면서 저절로 숙연해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고통스럽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노력의 열매들을 값없이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고 냄새 맡고 그 전체를 빨아들일 듯이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그 열매들을 구입해 노력의 대가를 치러주는 것이 화가들과 화랑에 대한 예의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값없는 은혜만 누리고 돌아갈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값없이 열려 있는 공간인데도 사람들의 발길은 막 전시를 시작한 갤러리를 제외하고는 뜸한 편이었다. 추상화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이 어려워 그런 것일까. 나의 추상화 감상 비법은 어떤 대상을 그린 그림으로 보기보다 내 앞에 그런 형태의 물체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날개를 펴보는 것이다. 추상은 구상의 비구상화를 통해 이뤄지듯 나는 그림의 ‘비그림화’를 통해 추상화를 감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희한한 물건들을 보고 왔군 하며, 그 물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보기도 하고 해체해보기도 한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도 색채의 난바다가 펼쳐지고 선들의 파도가 밀려오면서 은하계만한 추상화가 그려지곤 한다.

이것은 일종의 초월의 체험이요 황홀의 경험이다. 그야말로 느낌표(!) 하나가 내 마음에 세워지는 것이다. 이런 느낌표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많이 세워질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출판계에서는 이상한 느낌표가 문제가 되고 있다. 모 방송국의 그 프로가 처음에는 신선한 느낌표를 황량한 독서계에 세우는 듯했으나 차츰 그 느낌표는 꼬부라져 이제는 물음표(?)가 되고 말았다.

‘왜 한 달간이나 추천도서를 집중적으로 홍보해주느냐?’ 등등 물음표들이 많다. 추천도서로 인한 한 달간의 출판사 수익과 작가 인세 전체가 그 방송국에 기부되어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고 하니 ‘한 달간’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런 기이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변질안된 느낌표로 바로서길▼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출간된 지 2년이 넘은 책들을 추천도서로 한다는 규정 때문에 새로 출간되는 책들이 좀처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지 못해 출판계가 새로운 기획에 대한 의욕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오히려 주변 출판사들이 불우이웃으로 전락해가고 있어 불만들이 대단하다. 물론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치중해온 출판계의 고질적 관행과 매스컴의에 쉽게 휘둘리는 시청자들의 수준이 근본문제이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책과 독서행위를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것은 출판사와 작가들에 대한 인격적 모독으로까지 비친다. 모처럼 황량한 독서계에 세워진 느낌표가 물음표로 변질되지 않고 바로 서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마침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성기 소설가·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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