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세영]사회주의 국가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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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협상 한미 FTA, 우리가 세게 나가서 가능
러시아와 군축협상 때 레이건도 치킨게임 벌여
北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실패의 덫에 갇히지 말아야

안세영 서강대 국제협상 전공 교수
안세영 서강대 국제협상 전공 교수
“막상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면 거센 정치적 반발 때문에 대통령께서 제일 힘드실 것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앞둔 2006년 2월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필자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은 단호했다.

“국내 정치적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미국과 FTA를 해야지요.”

예상했던 대로 협상이 시작되자 집권 여당의 대표를 한 정치적 동지가 단식투쟁까지 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였다.

한참 막판 줄다리기를 하던 2007년 3월 워싱턴이 벌컥 뒤집혔다. 우리 대통령이 “한국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면 미국과 FTA 안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협상 안 하겠다고 ‘블러핑(bluffing)’을 세게 한 것이다. 서울이 먼저 판을 깨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선 엄청난 낭패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 의회 비준을 앞두고 워싱턴을 가니 “부시 대통령이 한국과의 FTA를 너무 서둘러 지나치게 많이 양보했다”는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하여튼 우리가 미국과 협상 한번 잘한 셈이다.

지금 한창 평양과 대화하고 있는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서 교훈을 얻어 신대북 협상전략을 짜야 한다. 우선 노 전 대통령이 워싱턴에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필요할 때 평양에 블러핑을 했으면 좋겠다.

그간의 남북협상을 분석해 보면 우리는 항상 하버드대의 맥스 베이저먼 교수가 말하는 ‘협상탈출 실패’의 덫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이 덫은 미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많이 저지르는 실수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협상을 꼭 성사시키라”고 말하면 부하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적당히 양보해 버린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남북대화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 할수록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협상탈출 실패의 덫에 걸리고 평양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려 들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와 협상하기는 정말 힘들다. 협상에 대한 ‘게임의 룰’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협상을 총을 안 든 일종의 전쟁으로 생각한다. 전쟁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에서 지연, 기선제압, 돌발상황 연출 등 온갖 지저분한 술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북한같이 협상하는 상대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선 유명한 라이파 딜레마 이론이 있다. 상대가 지저분한 술책을 쓰면 “그들과 똑같은 술책으로 맞받아치라”는 것이다. 안 그러고 마냥 점잖게 협상하면 질질 끌려다니다 손해를 본다.

예를 들어 현송월이 느닷없이 일정을 지연하면 조급히 말려들지 말고 우리도 ‘한 주 정도 늦추자’고 맞받아 지연 전략을 쓰는 것이다.

냉전을 종식시킨 것은 대화와 협상의 달인 키신저 외교가 아니다. 힘의 우위로 소련을 군사 경제적 압박으로 거세게 몰아붙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치킨게임이었다.

역사적 핵 감축 타결을 한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을 보면 우주에서 소련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SDI 프로젝트 개발을 저지시키고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필사의 노력을 하였고, 레이건은 협상을 깨겠다고 하며 상대를 정말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런데 SDI는 당초부터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었던 것으로 판명됐으니 레이건은 ‘도깨비 방망이’로 소련을 굴복시킨 셈이다.

과거 우리가 남북대화를 해도 북한은 핵을 개발했고, 대화를 안 해도 핵을 개발했다. 건군절을 2월 8일로 앞당겨 군사 퍼레이드를 하겠다는 북한을 보니 아무리 남북대화를 해도 그들은 그들의 길을 계속 갈 것 같다.

북한의 태도를 바꾸는 유일한 길은 핵 보유의 손익계산서를 ‘빨간색’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핵 보유로 얻는 체제 보장이라는 ‘이익’보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체제 붕괴의 위험이라는 ‘손해’가 더 클 때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한 손으로 대화하고 다른 한 손으로 핵개발을 한다면, 신대북 협상전략에서는 우리도 똑같은 방법으로 맞받아치면 된다. 평화를 위한 남북대화는 하되 ‘남북대화=대북지원’이라는 과거의 방정식을 버리고 미국, 유엔과 공조하며 기존의 군사·경제적 제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핵 보유의 손익계산서에 빨간 경고등이 켜질 것이고, 그때 그들은 문 대통령이 놓은 평화의 징검다리를 건너와 비핵화를 위한 진정한 협상을 할 것이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협상 전공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남북대화#현송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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