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한국의 극장

  • 입력 1997년 2월 18일 20시 11분


영화보러 극장에 자주 가는 편이다. 한국의 극장은 특별한 체험이다. 영화가 스크린에서만 상영되는 것이 아니라 극장 이곳 저곳에서 상영되는 듯한 느낌이다. 나만 유독 민감한 건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편하게 앉아서 영화를 감상하려고 하면 자신이 마치 밀폐된 개미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수백가지 작은 소리,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장면들이 스크린에 꿈처럼 가득찬다. 주인공들이 서로 마주보면서 키스를 하려고 한다. 분위기를 착 잡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냠냠하며 오징어 먹는 소리, 쩝쩝하며 과자먹는 소리가 영화의 분위기를 다 부숴 버린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미국중앙정보국의 주컴퓨터실에 접근한다. 온갖 자동감시장치가 동작중인 실내를 천장에서부터 거꾸로 내려오면서 시스템에 접근하는 동안 사람들은 숨을 멈춘다. 그때 정말 극적으로 터지는 부스럭부스럭 과자봉지 뒤지는 소리, 와삭와삭 씹는 소리는 산통을다 깨버린다. 극장에서 음식물을 먹으면 소리뿐만 아니라 냄새도 난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면 큰 쓰레기더미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주스때문에 젖은 바닥은 깨끗이 치워지지도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남이 무엇을 먹고 있을 때 매우 너그럽다. 먹는 것이 최우선의 기본권처럼 되어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공장소에서는 개인의 작은 불편쯤은 조금 참는 것이 결과적으로 모두를 존중해주는 것이 될텐데. 그렇다면 문화자체의 감상뿐 아니라 서로서로 쾌적한 느낌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게 되어 더 멋진 시간이 될텐데…. 이다도시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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