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뉴욕 교포상인의 위기

  • 입력 1997년 2월 9일 20시 13분


외교관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다. 뉴욕에서 식품점을 하는 한국인에게 어느날 3백만달러를 지불하라는 소장이 날아들었다. 뭘 잘못했는지 영문도 모르는 사이에 민사재판의 피고가 된 것이다. 소장에 기재된 내용에 의하면 그 한국인이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과실이 원인이 되어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랬다. 한국인 상점 부근에서 자동차 전복사고가 일어났다. 한 소년이 음주를 한 채 친구 두 명을 차에 태우고 운전을 하다 차가 뒤집혀 숨졌다. 살아남은 소년이 한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에서 술을 샀다고 둘러댔다. 죽은 소년의 부모는 상점을 경영하는 한국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 한국인은 난감했다. 정말 자기가 술을 판 사실이 없는데 증인인 소년이 그렇다고 하는 데에야 꼼짝없이 당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몇푼 못버는 그로서는 소송에서 진다면 미국 생활은 파산을 하고 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 한국인들은 차로위반을 잘하고 또 미성년자에게 술을 파는 등 위법적인 행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상대편 변호사는 그런 점들을 잡아 법정에서 강조함으로써 그의 잘못을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카운터에 있는 여러장의 신분증명(ID) 카드가 눈에 띄었다. 그것들은 미성년자들이 가짜 ID카드를 가지고 와서 그를 속이고 술을 사려고 할 때 빼앗은 것들이었다. 그 사실을 안 그의 담당변호사는 쾌재를 불렀다. 그의 준법정신을 법정에서 입증할 수 있는 증거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소송에서 원고인 미국 소년 아버지의 청구가 기각당하고 한국인은 파산을 면할 수 있었다. 이제 그런 일들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사회도 점차 신용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차하는 사이에 신용카드대금의 지급이 늦어지고 또 나도 모르는 순간 교통규칙을 위반한다. 사소한 잘못도 쌓이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신용이 훼손된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사회마저 기우뚱할 수 있다. 복잡해지는 우리사회에서 서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생활에 스며든 규칙과 법부터 주의해서 지키는 일이다.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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