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창작극으로 만나는 ‘영종도 아픈 역사’

  • 입력 2009년 9월 11일 06시 50분


코멘트
1875년 日운요호 사건 다룬 ‘아! 영종진’ 30일부터 상연
호화 출연진-화려한 액션 눈길

인천 영종도에 ‘잊힌’ 역사가 있다. 조선의 문호를 열도록 한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기 1년 전인 1875년 영종도에서 조선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 해안을 탐측하기 위해 왔다며 불법으로 침투한 일본 군함 운요(雲揚)호가 강화도 초지진 앞바다에서 함포 사격 시위를 한 뒤 인천 앞바다로 돌아 나오다 영종도 진지(영종진)를 공격했던 것. 식민사관으로 왜곡돼 있는 이 역사 사실을 소재로 한 편의 창작 역사극이 만들어지고 있다.

○ ‘운요호 사건’이 아닌 ‘을해왜요(乙亥倭擾)’

1866년과 1871년 프랑스와 미국 군함이 강화도를 침범한 것은 각각 ‘병인양요’ ‘신미양요’로 불린다. 서양인이 일으킨 난리이기 때문에 양요(洋擾)를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는 ‘난리’가 아닌 ‘운요호 사건’으로 교과서에 기록돼 있다.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1875년이 을해년이기 때문에 일본 군함이 침공한 사건도 서양과 같은 잣대로 ‘을해왜요’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인천문화발전연구원은 ‘을해왜요’를 잊지 않기 위해 2005년부터 영종진 터에서 혼령제를 지내고 있다. 1875년 9월 21일 영종진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조선 병사 35명이 숨졌기 때문이다. 당시 운요호 전함은 영종진을 향해 함포 사격을 한 데 이어 특수부대원 56명을 영종도에 상륙시켜 조선군이 보유한 대포 36문, 화승총 100여 정, 가축 등을 약탈해갔다.

인천문화발전연구원은 1883∼1933년의 인천 역사를 기록한 ‘인천부사’를 번역 출간하는 작업을 하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원 박한섭 원장은 “당시 영종진에는 400여 명의 조선군이 있었으나 화력 차가 너무 커 쉽게 패배했다”며 “130년간 영종진의 아픈 역사가 알려지지 않았고, 후손들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종도에서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을 벌이는 한국토지공사는 최근 문화재 발굴조사를 벌인 끝에 중산동 구읍뱃터 인근의 영종진 터에 역사문화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 예술로 승화된 ‘전몰 영령 추모제’

7일 오후 인천 계양여성회관 대강당에서는 비보이와 래퍼들의 연기 연습이 한창이었다. 무희들이 나와 퍼포먼스를 했고 아낙네, 장군, 창을 든 병사 역할을 맡는 연극인들도 표정 연기에 열심이었다.

120명이 출연하는 창작 연극 ‘아! 영종진’의 리허설 장면이다. 박웅, 기정수, 김창준, 곽정희 씨 등 쟁쟁한 연극인들이 이 연극에 대거 출연한다. 이들은 ‘아가씨와 건달들’ ‘안중근과 이등박문’ 등의 인기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베테랑급 연기인이다.

‘아! 영종진’은 역사를 소재로 했지만 춤과 영화 액션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랩과 국악의 절묘한 만남도 이뤄지도록 한다. 화약총을 실제로 발포해 특수효과를 최대한 살린다.

이 연극은 30일 오후 7시 반과 10월 1, 2일 오후 3시 7시 반, 10월 4일 오후 3시 인천종합문예회관 대공연장 무대에 올려진다. 관람료는 VIP석 3만 원, R석 2만 원, S석 1만5000원, A석 1만 원.

22일 치러질 영종진의 ‘혼령제’ 때 이 연극의 주요 장면이 20분간 ‘갈라 콘서트’ 형태로 선보인다. 연출가 박성신 씨(33)는 “역사적 사실을 재미있게 풀어가면서도 좋아진 세상에 인심이 사나워진 현대 부조리도 드러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032-777-8866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