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재기자의 ‘어제 현장’/인력시장]“노가다 업계는 사람이 ‘금’이에요 金…”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4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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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문 직업소개소 '○○인력'의 새벽 5시
● 하루 일당 10만원 인생의 처절함 그리고 애상
● '생산적 복지'란 과연 어떤 조건에서 가능할까?

"○○씨, ○○씨, ○○씨…이들 세 분은 오늘 응암동, 바로 버스타고 출발하세요! 혈압은 160이하인거 알죠? 자신 없는 분들은 체크하고 약 먹고 가세요."

지하철이 운행 전인 새벽 5시. 늦여름이라고 해도 여전히 이른 시간이기에 세상은 아직도 깜깜한 어둠에 쌓여있다. 그러나 '이 곳'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누군가 마이크로 호명을 하면 담배를 피우던 어르신들은 큰 목소리로 답변을 하고 '작업장 위치'를 확인하고 일터로 향한다.

서울역 광장에서 북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독립문 사거리. 광화문과 연세대를 잇는 금화터널 고가 아래 '○○인력'이란 간판이 빛난다. 이른 새벽임에도 150여명의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이들은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여전히 '노가다'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주로 40대에서 60대 후반에 이르는 이들은 이른 새벽 도보나 버스를 타고 이 곳에 도착한다. 상당수는 이 근처 원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회사 입구를 지나자마자 주섬주섬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인력회사에 제출한다. 이를 받아 쥔 인력회사는 재빨리 이들의 직역을 분류해서 하루 일거리를 배치한다. 책상 위에는 어제 당도한 인력요청서가 수북이 쌓여 있다.

"시청 작업장은 3명, 가재울 철거인력은 5명…○○씨 이름 불렀으면 빨리 따라가요."

■ 모두가 기피하는 노가다…장년층만 남다

마이크를 쥐고 인력을 배치하는 사람은 이 회사의 대표인 김진숙 소장(52)이다. 그는 '노가다 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여장부다. 이곳 독립문에서만 25년째 인력소개소일을 하고 있고 영등포에도 지점을 운영중이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가까운 독립문은 교통이 편리하면서도 서울역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이 곳이 '일용직들의 중심지'가 된 것도 순전히 김 소장의 '○○인력' 때문이다. 지금도 개발의 흐름에 한 발 비켜 서있는 독립문 부근은 한 달 20~30만 원짜리 값싼 여관과 고시원들이 즐비하다.

노가다. 공사판 일용직이나 현장직을 일컫는 속어다.

"할일 없으면 '노가다'라도 하지?"

노가다. 흙으로 된 방(토방)을 지칭하는 '토카타'라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노가다는 우리사회에서 오랫동안 사용됐지만 피해야할 어휘 가운데 하나다. '잡부' 혹은 '막일꾼'이라는 대체 표현도 있으나 '노가다'가 건네는 인상이 훨씬 강렬해 자주 쓰인다. 요즘 현장인력이 어디나 태부족이기 때문에 이들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이들의 하루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바라시(해체) 2명은 김포공항으로…철수씨,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원래 9만원인데 일 잘하면 10만원 주기로 했으니까 잘 하고 와요. 목수, 목수는 오늘 13만 원짜리 일이에요."

김 소장의 목소리를 거칠었고 때론 단호했다. 그러나 모두들 그의 말을 경청했고 순순히 따르고 있었다. 그제야 시선을 어르신들에게 돌려본다. 대부분 그들의 표정은 침착했지만 활력이 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상당수가 청춘을 흘려보낸 지 한참이 지난 세대다. 다들 무슨 사연 한 보따리씩은 안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모두가 어깨에 가방을 하나씩 들쳐 메고 있다. 옷가지와 작업장비가 들어있을 것이다. 복장은 조끼와 군복 등 다종다양하지만 깨끗하게 정비되지는 못했다. 모두가 더러운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고 있어 한 눈에 '일용직 노동자'라고 알아챌 수 있었다.

■ 하루 5시에 일이 시작, 오후 5시면 일당 받고 퇴근

공사판 일정은 화이트칼라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최대한 더위를 피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7시30분에 일을 시작해 9시30분에 간식을 먹고 다시 12시까지 일하고, 1시 반에 다시 일을 재개해 3시30분에 간식을 먹고 5시30분에 일을 종료한다. 돈을 직접 수령하기도 하지만 다시 소개소로 돌아와 일당을 회수하는 형식이다. 그러니까 이곳 직업소개소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직장'인 셈이다.

6시10분. 인력사무소 직원들의 손길과 발길이 더 분주해 진다. 직원 몇 명은 서울역에 나가서 일할 사람을 더 모아오기도 하고 숫자가 많은 작업장으로 봉고차로 직접 나르기도 한다.

그 때쯤 모 건설회사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분주한 틈을 비집고 들어서 김 소장에게 무언가 부탁을 한다. 낮에 급하게 쓸 사람 몇 명만 빼달라는 얘기다. 종일 근무가 아니라 반나절만 근무하면 된다고 절반 가격을 제시한다. 순간 김 소장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여기나온 사람 아무나 붙잡고 반나절만 일하자고 얘기해 보쇼. 씨알이 먹히나? 누가 새벽에 댓바람 맞고 나와서 반나절 일하고 싶겠소. 어여 가보쇼. 요즘 사람이 금이에요 금!"

머쓱해진 직원은 도망치듯 황급히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가 나가자 근로자들의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반나절만 하라니" "저 나쁜 사람" ….

6시30분이 되자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작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늦게 출근한 사람들의 일자리 배치가 이어졌다. 전화도 더 자주 걸려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오늘 급하게 몇 명 보내줄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 찾는 전화였다.

"죄송합니다. 어제 예약한 자리도 지금은 사람이 부족해서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서 사람은 부족하고 일거리가 넘쳐서 그래요."

김 소장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리쉰다.

사무실 곳곳에는 다양한 알림이 나붙어 있다. 첫 번째로 눈길을 끄는 문구는 "음주한 사람 출입 금지" 표시였다. 두 번째는 "비가와도 출근하세요. 일거리는 항상 많습니다!"였다. 실제로 막노동 일거리는 넘쳤고 대부분 건설현장인 특성상 나이 많은 노동자의 혈압을 체크했다. 술 먹고 작업하다가 사고나 났을 경우 고용한 회사가 겪어야할 '번잡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 일용직 태반이 핸드폰 없어…주말엔 경마장으로 출근

"전 오늘 거기 안 갈래요."

7시. 어제와 똑같은 일자리를 제안 받은 한 어르신이 반발했다. 어제 나가봤지만 일이 힘들고 기대만큼 보수가 안 좋았나 보다. 혹은 작업장에서 괄시를 당했을 수도 있다. 8만 원짜리 일이었다. 그러자 김 소장은 그를 쏘아 붙인다.

"아니 7시에 나와서 무슨 일을 가려요? 남들은 다 5시에 나왔는데…그리고 현재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거 밖에 없어요. 이거하기 싫으면 집으로 돌아가세요."

양쪽모두 기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김 소장의 기를 당해낼 수 없었다. 순순하게 그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7시30분. 사무실 전화는 쉬지 않고 울어댔다. 절반은 "오늘 일할 사람이 있냐?"는 문의였고 나머지는 제 시간에 공사장에 도착하지 않은 일꾼을 찾거나 정확한 작업장 장소를 찾는 근로자들의 전화였다. 작업장 대부분이 시내 구석진 곳에 있었고 근로자들이 홀로 찾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용주와 일용자들의 만남이 쉽지 않아보였다.

"이봐요 김씨 아저씨. 거기 편의점 안보여요? 편의점을 코너에 놓고 돌아가라고, 최씨는 공릉동 일이 취소됐다니까? 거기 말고 빨리 서대문으로 옮겨가요."

"일꾼 가운데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80%에요. 대한민국 초등학생도 다 있는 핸드폰이 왜 이 사람들은 없느냐고? 핸드폰만 있으면 정말 얼마나 좋아. 개인 오더도 받고 어휴…진짜 이 사람들 너무 한심해, 불쌍하기도 하고…"

대한민국에서 휴대폰이 없다는 의미는 '신용불량자'라는 간접증거가 되기도 한다. 실제 '일용직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가족이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었고 주말에는 모아둔 돈으로 경마장과 경륜장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주중에는 노름빚을 마련하기 위해 노가다 현장으로 향한다. 핸드폰을 마련할 여유가 없는 셈이다.

8시가 넘어가자 대부분의 일거리 배치가 끝이 났다. 오늘 독립문에서 배치한 인력이 200명을 훌쩍 넘었다. 전성기에 비하면 한참이나 줄었다고 한다. 요즘 노가다 인력소개는 강북인 독립문 보다는 중국동포가 많은 구로나 영등포가 우세하다고 한다.

"내가 이 일을 자자손손 하려고 했다면 진작 구로로 옮겼겠죠. 하지만 내 아들에게는 이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냥 여기 남았어요. 1년 360일을 새벽 5시에 출근해야 하는 일이에요. 평생 여행한번 제대로 못 갔어요…그렇다고 뭐 누가 이 일을 좋아서 하겠어요. 대학생들도 돈 준다고 안 해. 10년 전만 해도 대학생이 50명은 나왔다니까요."

전쟁과 같은 새벽 시간이 지나갔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을 배정받았다. 작업장 청소와 수신호 관련된 일들이다. 이런 단순 노동은 8~9만원. 거푸집이나 그라인더 같은 최소한의 기술이 들어가면 10만 원 이상, 목수 등의 고급 기술은 13만 원 그 이상이다.

일견 적지 않아 보이는 일당이지만 하루하루 일을 정산하기 때문에 일용직 근로자들은 "돈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실제 일용직으로 버는 돈은 금새 지갑에서 사라진다. 그렇다고 환갑 전후의 어르신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회사는 없다. 그러나 '일용직'은 꼭 필요하고 그만한 수요가 존재한다. 새벽 5시 매일같이 '○○인력'의 간판에 불이 들어오는 이유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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