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2부]<3>전국 최대 다문화 도시 안산의 3색 교육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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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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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학교 특별학급 예체능은 함께, 國·數는 수준별 수업… 5년만에 정착

“사물놀이 신나요” 지난달 25일 경기 안산시 원일초등학교에 있는 다문화 특별학급의 학생들이 방과 후에 사물놀이를 배우는 모습.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고 만든 프로그램이다. 안산=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사물놀이 신나요” 지난달 25일 경기 안산시 원일초등학교에 있는 다문화 특별학급의 학생들이 방과 후에 사물놀이를 배우는 모습. 한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고 만든 프로그램이다. 안산=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초중고교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학생이 4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4월 기준 다문화가정 학생은 3만8775명. 지난해(3만1788명)보다 7000명가량 늘었다. 다문화 학생은 2008년 이후 해마다 5000명씩 증가하는 추세다.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에서 고르게 늘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는 문제는 일부 지역이나 특정 기관만의 고민이 아니다. 전국 교육 현장에서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이 이어지지만 다문화와 다문화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지 얼마 안 된 형편이다. 이들을 위한 교육은 현재진행형 실험이나 마찬가지인 것. 그중에서도 경기 안산시는 전국 최대의 다문화 도시다. 다문화 학생을 위한 세 가지 색깔의 교육 현장을 둘러봤다. 》
○ 공교육의 모델, 다문화 특별학급

중국동포 출신인 김현성(가명·14) 군은 지난해 2월 한국에 왔다. 어머니와 함께 입국했을 때 김 군이 아는 한국말은 ‘안녕’ 같은 인사가 고작이었다.

김 군이 찾은 곳은 집 근처에 있는 안산시 원일초교의 다문화 특별학급. 김 군 같은 다문화 학생 30여 명이 함께 다니고 있다. 비슷한 아픔이 있는 친구들은 금세 친해졌다. 함께 어울리면서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한국어 실력이 빨리 늘었다.

모국어인 중국어를 빠르게 잊어버리기 시작하자 학교 측은 올해 초 김 군에게 중국어 강사를 전담 배치했다. 3개월 사이 김 군은 새로 온 중국인 친구에게 통역까지 해줄 정도로 양쪽 언어에 능통한 수준이 됐다.

원일초교 다문화 특별학급은 다문화가정 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특징. 올해 개설 5주년을 맞았다. 전국에서 다문화 특별학급이 설치된 곳은 안산시 원일초교와 원곡초교, 시흥시 시화초교 등 3곳이 전부다.

특별학급은 손소연 교사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생들은 일반학급과 특별학급을 오가며 교육을 받는다. 음악 미술 체육 체험활동 같은 과목은 다문화 학생과 한국 학생이 함께 수업을 받는다. 국어 수학 같은 과목은 특별학급에서 수준별로 수업을 받는다. 그래서 특별학급 시간표는 개인별로 모두 다르다.

정규교사인 손 씨 외에 기간제 교사와 이중언어교사, 보조인력까지 4명이 보살핀다. 손 교사는 “체류 상황에 상관없이 학생들이 한국문화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나아가 다른 학생과 유대관계를 쌓으며 자존감을 높여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특별하지 않은 교육, 한국다문화학교

경기 안산시 물댄동산 다문화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축구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 물댄동산 다문화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축구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원일초교에서 승용차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원곡동 다문화특구가 나온다. 이른바 ‘국경 없는 마을’이다. 이곳의 한 건물 4층에 한국다문화학교가 있다. 다문화 학생을 위한 이른바 대안학교다.

전국적으로 이런 대안학교가 10여 곳에 이른다. 물론 학력은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다문화학교가 지금 쓰는 공간은 임시 교사(校舍)다. 100m²(약 30평)가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을 교실과 사무실로 나눠 쓴다.

이곳에는 60여 명의 학생이 있다. 한국에서 자란 국제결혼가정 학생, 중도입국 학생, 외국인근로자 가정의 학생까지 다양하다. 연령 및 수준별로 과정을 구분했지만 교실 하나에서 동시에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

수업 여건은 열악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다. 특히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다 이곳을 찾은 학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2007년 한국에 들어온 중국 출신 이진호(가명·15) 군. 어머니와 새아버지는 경남 밀양에 산다. 이 군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안산에 터를 잡고 2008년 일반 중학교에 들어갔다.

중국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90점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한국에서는 40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한국 친구들은 이 군의 말투를 따라하며 ‘병신’ ‘바보’ 같은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게 일반 중학교를 들락날락하다 올해 초 한국다문화학교를 찾았다. “내 인생 망했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다”며 울분을 토하던 이 군은 지금 이곳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즐겁게 배우고 있다.

최병섭 사무국장은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구분 지어 특별하게 가르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다문화학교는 내년 안산지역에 정식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문제는 200억 원이 넘는 설립비. 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지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

○ 예비학교, 물댄동산 다문화지역아동센터

물댄동산 다문화지역아동센터는 3년 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문을 열었다. 4개국 출신 38명의 청소년이 있다. 8세부터 18세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14세 이상은 15명.

정규 학교를 다니지만 아직 한국말이나 글이 서툰 학생은 이곳에서 보충수업을 받는다. 이른바 ‘방과후 학교’인 셈이다. 또 중도입국한 청소년은 여기서 기본교육을 받은 뒤 정규 학교에 입학한다.

다문화가정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을 찾는 청소년이 꾸준히 늘고 있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한글과 함께 국어와 수학을 배운다. 한국어 교사와 해당 모국어 선생님이 함께 수업을 지도한다.

센터는 정규 학교와 다문화가정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 다문화가정 부모는 자녀의 교육 및 진학 문제를 상담하고 정규 학교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논의한다.

정권 센터장은 “국제결혼가정 자녀와 중도입국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기 특성에 맞춘 계획과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며 “상급학교 진학과 새로운 학교 입학에 대해 불안해하는 청소년과 부모들에게 유익한 교육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 늘어나는 중고교 진학… 더 힘겨운 적응 ▼
안산 ‘중학교 특별학급’ 추진… 서울 - 인천은 대안학교 검토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 중에서 중고교에 진학하는 학생이 늘어나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르면 내년에 경기 안산의 공립중학교에 다문화 특별학급을 개설할 계획이다. 원일 원곡초교에 특별학급을 만들었지만 이곳을 졸업한 학생 가운데 일부가 상급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2일 안산 관산중에서 ‘중학교 단계 다문화가정 학생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갖고 본격적인 실태 파악에 나섰다. 초등학교와 달리 과목별로 수업을 하는 중학교에 특별학급을 설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대안을 찾는 중이다.

학교나 교사에 대한 지원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특별학급을 설치하기는 쉽지 않다. 초교와 달리 중고교에서는 학습 분위기 저해를 우려해 다문화가정 학생을 받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일선 학교와 교사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급처럼 다문화 특별학급 교사에게 가산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정수 관산중 교장은 “다문화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에게는 인사 및 예산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과 인천은 다문화 학생을 위한 공립형 대안학교를 설립할 방침이다. 민간단체 여러 곳에서도 대안학교 설립을 검토하는 중이다.

그러나 다문화 청소년만 다니는 대안학교 설립에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결국 한국에서 자랄 아이들을 따로 교육하면 이들을 격리하는 셈이나 다름없다는 지적.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은 “학교 이탈 청소년을 위한 소규모 사설 대안학교는 필요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이들만 가르치는 대안학교가 필요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공과 민간부문이 서로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혜영 성결대 다문화평화연구소장은 “대안학교는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공교육이 중심을 잡고 민간부문은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학생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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