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규제에 갇힌 신도시]<2>두동강 난 성남

  • 입력 2008년 10월 23일 02시 59분


‘고도제한’ 40년 발목… 수정 - 중원구 재개발 지지부진市 전체면적중 58% 군사시설 보호법 묶여

대부분 구시가지… 분당과 ‘區區갈등’ 심화

“제2 롯데월드는 된다는데 우린 왜…” 불만

전문가 “비행안전구역 합리적 조정 절실”

2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경원대.

지하 4층, 지상 7층 규모의 ‘비전타워’ 공사가 한창이다.

전체 건물 중 지하 시설물이 차지하는 면적이 4만4186m²로 국내 대학 중 가장 크다.

그러나 이곳이 국내 최대의 지하 캠퍼스가 된 배경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서울공항의 비행안전구역에 포함돼 모든 건축물의 고도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경원대 관계자는 “건축물 고도제한(높이 45m) 때문에 지하 공간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었다”며 “서울과 지방의 대학처럼 20, 30층짜리 건물을 짓고 싶지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성남시 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95만 명. 총자산은 17조 원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다.

분당신도시의 영향으로 외형은 크게 성장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성남시 전체 면적 141.8km² 가운데 58.6%인 83.1km²에서 모든 건축물의 높이가 제한돼 개발이 더디다.

특히 규제가 구시가지에 집중되면서 이름만 성남시로 같을 뿐 사실상 신구 시가지로 두 동강난 상태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고도제한

성남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같은 수도권 규제를 고스란히 적용받는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도 전체의 34.7%(49.2km²)에 이른다.

기존 시가지인 수정 중원구와 신도시인 분당구를 제외하면 개발 여지가 거의 없다.

조성된 지 40년 된 구시가지에 대한 재개발 추진도 1970년 당시 공군기지법 제정(서울공항은 1971년 설립) 이후 적용된 규제 때문에 지지부진한 상태다.

군용 항공기지 주변의 비행안전구역은 총 6개 구역. 활주로 옆 1구역은 군사시설만 들어설 수 있다. 나머지 구역에서는 지표면 또는 활주로 표면을 기준으로 거리, 경사도 등에 따라 일반 건축물의 높이를 다르게 제한하고 있다.

5, 6구역에 포함된 성남시 구시가지의 경우 높이 45m를 넘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성남시 조례상 상업지구 용적률은 800%이지만 이곳에서는 400%까지만 가능하다.

20, 30층 높이의 아파트 재건축도 불가능해 대부분 15층 안팎에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당연히 경제성이 떨어지고 가구주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기존 소형 아파트 소유자의 경우 90m² 남짓한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최소 2억 원 이상을 더 내야 할 형편이다.

이재경 재건축·재개발연합회장은 “서울의 잘사는 사람들이야 2억, 3억 원의 부담금을 감당하겠지만 이곳 주민들 중에 그 정도 돈을 낼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느냐”며 “규제 때문에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규제 때문에 신구 시가지 갈등 확대

수정 중원구가 강제이주를 통해 즉흥적으로 탄생한 반면 분당구는 정부의 주택 200만 채 건설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신도시다.

기반시설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주거 환경조차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해 말 현재 수정 중원구의 인구는 51만여 명, 분당구는 43만 명이다.

그러나 분당구에 종합병원이 3개나 있는 반면 수정 중원구에는 1개에 불과하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신시가지에 8개 있지만 구시가지에는 달랑 1개만 있다. 공원의 경우 분당구에 138개가 조성됐으나 수정구에는 66개, 중원구에는 고작 19개가 있을 뿐이다.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괴리감은 더 크고 깊다.

수정 중원구 주민들은 ‘구시가지’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 대신 ‘본시가지’라는 이름을 쓰는 사례가 많다.

분당구 주민들 역시 ‘분당시’ 독립을 주장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일산 평촌 등 1기 신도시가 들어선 곳마다 비슷한 지역갈등이 있지만 성남시의 경우 유독 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원대 송태수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시가지 형성 목적과 과정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두 지역 간 격차를 단시간에 없애기는 매우 어렵다”며 “기존 시가지의 기반시설과 주거환경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비현실적인 규제”

정부가 최근 제2롯데월드 건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면서 성남시 고도제한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낡은 항공기와 조종, 관제기술을 근거로 지정된 고도제한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것.

성남시와 주민들은 “기업 투자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제2롯데월드 건립을 반대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성남시 개발을 위해 고도제한 철폐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도 성남시의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현행 고도제한을 현실에 맞춰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신성환 항공우주법연구소장은 “비행안전구역은 긴급 상황을 고려해 설정된 것”이라며 “실제로 비행안전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현재 성남시의 고도제한은 분명히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정확하게 조사해 군과 성남시가 협의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신영수(경기 성남 수정) 국회의원도 “항공기와 관련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고도제한은 여전히 20, 30년 전 관제기술을 기준으로 통제되고 있다”며 “비행안전구역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대엽 성남시장 “규제 완화돼야 재개발사업 탄력 정부-기업-시민 상생의 길 찾아야”▼

“상생의 길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이대엽 성남시장은 22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비행안전구역 내 고도제한 조치와 관련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성남시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결정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남시 불균형 발전의 원인은 무엇인가.

“수정구와 중원구 그리고 분당구는 성남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로 다른 목적에 따라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도로 같은 기반시설은 물론이고 의식주와 관련된 기본적인 주거환경의 차이가 크다.”

―고도제한 문제가 기존 시가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60m² 남짓한 땅에 6∼8가구가 한 건물에 사는 곳이 수정구와 중원구 지역이다. 승용차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 낡은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그러나 고도제한에 묶여 고층건물 한 채도 제대로 짓지 못했다.”

―고도제한 완화 또는 폐지가 왜 필요한가.

“수정, 중원구와 분당구, 새로 조성되고 있는 판교신도시 사이의 격차를 없애려면 효율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재건축 및 재개발사업이 추진돼야 하는데 고도제한 때문에 14층 정도밖에는 건축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고밀도 건축이 불가피해 분당, 판교지역과의 격차를 없애기는 영원히 힘들어진다.”

―시민들이 고도제한 철폐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성남시의 대응 방향은….

“성남시 고도제한 문제는 100만 시민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시에서도 7월 국방부에 고도제한 추가 완화를 공식 요청했고 이달 초에도 건의를 한 바 있다. 앞으로 계속 군과 협의하겠지만 만약 시간 낭비만 된다면 시에서도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영상취재 :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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