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메트로 문화&사람]<21>짚풀생활사박물관 인병선 관장

  • 입력 2008년 4월 7일 02시 51분


농가 한 채를 도심에 옮겨놓은 듯

멍석… 짚신… 도롱이… 짚공예 400여점 전시

짚풀문화 체험 - 전통 유물전 등 어린이에 인기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볏짚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볏짚단이 수북이 쌓인 모습은 요즘 농촌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짚풀생활사박물관은 그런 점에서 아주 독특한 공간이다. 집 안팎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게 볏짚단이다.

참새 수십 마리가 쉴 새 없이 볏짚 주변을 오가는 모습도 이채롭다. 한옥 마당 한쪽에는 볏짚으로 만든 지게, 다른 쪽에는 볏짚 장승이 눈길을 끈다.

한옥 마루에 앉아 안뜰을 바라보면 농가 한 채를 도심 한복판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

매년 벼 수확이 끝난 뒤 볏짚을 사서 집 안 곳곳에 보관한다. 5t 트럭 한가득 볏짚을 싣고 오면 이듬해 1년을 풍족하게 쓸 수 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은 고(故) 신동엽 시인의 부인인 인병선(73) 관장이 1993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만들었다.

명륜동으로 옮겨 온 것은 2001년. 지난해에는 본관 옆 한옥을 매입해 다양한 짚풀 체험을 하도록 한옥관을 만들었다.

○ 시인의 아내서 짚풀문화 전도사로

인 관장은 서울대 철학과를 다니다가 신 시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과 함께 문학의 길을 걸어 시집 ‘들풀이 되어라’(1989년)와 산문집 ‘벼랑 끝에 하늘’(1991년)을 펴냈다.

남편과 1969년 사별한 뒤 문학에서 짚풀 문화로 관심사가 바뀌었다. 그는 “문학에서 남편의 그늘이 너무 깊었어요. 나 말고도 수천 명이 문학을 하지만 짚풀 문화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짚풀 문화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 생겼다. 경제 개발과 새마을운동으로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대였다.

곳곳에 있던 초가집이 헐리고, 볏짚으로 만든 전통 유물이 사라졌다. 그는 이런 모습을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 관장은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전국 농촌을 돌아다녔다. 농부들이 쓰던 물건을 사진기에 담고,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는 “청자, 백자와 달리 볏짚 문화는 서민의 문화라서 더욱 가슴이 저며 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했다. 1980년대에는 시야를 넓혀 일본, 중국, 동남아의 짚풀 문화를 탐구했다.

세계 유일의 짚풀 전문 박물관이라는 평가를 듣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은 이렇게 탄생했다.

○ 전통과 현대의 짚풀 유물 한자리에

멍석, 가마니, 삼태기, 조리, 광주리, 망태, 짚신, 도롱이(띠로 만든 비옷)…. 본관 지하 1층에는 짚이나 풀로 만든 전통 생활용품이 용도별, 재료별로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짚으로 만든 개집, 암탉이 알을 품던 닭둥우리, 소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겼던 쇠신도 있다.

지상 1층 전시장의 주요 전시물은 현대의 짚공예품. 쥐나 소를 포함해 12지신을 모두 짚공예로 재탄생시켰고 기와집이나 장승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한옥관에서 열리는 짚풀 문화 체험이다. 참가자는 강사의 지도에 따라 볏짚으로 물고기, 여치집, 짚뱀, 달걀꾸러미를 만들 수 있다.

한옥관에서 열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전통 유물전’은 어린이에게 인기가 많다. 등잔, 소고, 죽부인, 인두, 토시, 패랭이, 설피, 뒤웅박 등 교과서에 나오는 물건을 정리해 놓았다.

150m² 내외 크기의 한옥 마당에서는 흙을 밟으며 줄다리기, 줄넘기, 짚공차기, 땅따먹기를 할 수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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