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영화 ‘청풍명월’과 운현궁

  • 입력 2004년 9월 17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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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가 일어나 국가 수반이 바뀌고 특수부대의 잘나가던 군인 두 명이 적이 돼 싸운다.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라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소재로 한 영화 ‘청풍명월’의 줄거리다.

영화는 인조와 반정 세력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과 달리 인조반정은 반정 뒤에도 나라가 평안해지지 않았다. 반정 세력은 뚜렷한 철학 없이 광해군의 정책 중 중립외교를 제외한 대부분을 그대로 이어갔다. 결국 중립외교 철폐가 불러온 두 번의 호란으로 민중은 큰 피해를 보았다.

영화 제목인 ‘청풍명월’은 광해군 시절에 있던 가상의 엘리트 무관 양성소 이름. 청풍명월의 우등생인 규엽(조재현)과 지환(최민수)은 절친한 친구였으나 반정 후 규엽은 왕실 호위청의 대장이, 지환은 반정공신을 노리는 자객이 된다.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운현궁 이로당의 동행각(왼쪽). 조선 말기 일그러진 역사를 지켜봤을 유서 깊은 이 한옥 건물들이 영화 ‘청풍명월’에서는 어둡고 은밀한 분위기를 짙게 풍기는 음산한 공간으로 등장한다. 오른쪽은 한 궁궐 안에서 자객 지환(최민수)이 규엽(조재현)과 검투를 벌이는 영화 속 한 장면이다. -김미옥기자

예사롭지 않은 설정과 시각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를 재현하는 접근법도 여타의 사극과는 다르다. 칼만 1000여자루를 만들었을 정도로 꼼꼼히 소품을 만들었다. 제작진이 “소품과 의상이 국보급”이라고 자화자찬했을 정도.

이런 꼼꼼함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조선의 거리를 그리는 방식. ‘청풍명월’의 밤 장면에 나오는 한옥들은 그 질감이 이전 사극과 판이하다. 아니 낯설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영화 속 한옥들은 음모와 암살이 횡행하는, 어둡고 은밀하고 무섭고 피 냄새 나는 공간이다. 같은 음모의 공간이라도 TV 사극에서 많이 봤던 한국민속촌의 한옥과는 박력이 다르다.

사무라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음기(陰氣)의 목조 건물. 그것이 한옥의 또 다른 ‘표정’이었다.

반정공신들이 자객에게 당하는 장면은 사적 257호인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촬영됐다. 지환과 함께 반정공신을 암살하던 시영(김보경)이 규엽에게 붙잡히는 곳, 반정이 일어난 것을 알고 지환이 스승에게 말을 달려 가는 곳도 운현궁이다. 반정 전 회상 장면에서 시영이 무예를 연마하는 곳은 운현궁 이로당의 동행각이다.

운현궁은 서울 시내의 한옥들을 이전해 복원한 남산골 한옥마을과는 달리 원래 장소에 그대로 있는 건물이다. 기와가 변색하는 등 세월의 더께도 그대로 안고 있다.

운현궁이 음산한 건물인 것은 아니지만 화사한 분위기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남산골 한옥마을에 어울렸던 것처럼 ‘청풍명월’의 밤 장면 분위기는 운현궁과 어울린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였다. 그의 권세가 절정이었을 때는 담장 둘레가 몇 리에 이르고 대문이 4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원군은 말년에 이곳에 연금당하는 신세가 됐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에서 3분 거리. 입장료는 어른 700원, 24세 이하 청소년 300원. 월요일은 휴관. 운현궁을 거닐며 일그러진 대한제국 역사에 젖어드느라 마음이 심란해졌다면 길을 하나 건너가 인사동에서 전통차를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는 것도 좋을 듯하다.

(도움말=서울영상위원회 www.seoulfc.or.kr)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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