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백기완씨 큰형 기성씨

  • 입력 2003년 2월 18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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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분단상황을 우리 가족처럼 확실히 느끼는 경우가 있을까요. 형님께서 금강산 육로관광을 가 보고 싶다는 말을 불과 며칠 전 하셨는데….”

17일 새벽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큰형인 백기성(白基成·78)씨가 지병인 폐질환으로 숨을 거두자 재야운동가 백기완(白基玩·71)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분단된 조국현실과 맞물려 평탄치 못했던 자신의 가족사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할머니와 부모 큰형 등 7명의 가족과 함께 황해 은율군에서 살고 있던 백 소장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모 작은형 등 3명과 남쪽으로 내려왔고, 큰형 등 나머지 4명은 북쪽에 남아 이산가족이 됐다.

북에 남은 큰형 기성씨는 황해민보의 기자생활을 하며 ‘사회주의자’로 청춘을 보낸 반면 작은형 기현(基鉉)씨는 24세이던 51년 한국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해 ‘철의 삼각지대’인 강원 금화지구 전투에서 숨졌다.

이후 기성씨는 57년 남파간첩의 임무를 띠고 월남했으나 곧바로 당국에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10여년간 옥살이를 했다. 출옥한 기성씨는 이후 광산개발 등 여러 사업에 손을 댔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해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출옥 후 넉넉치 못한 형편에서도 기성씨는 지난 30여년간 민족의 상징인 ‘백두산 호랑이’를 통해 통일염원을 나타내 보겠다는 생각에서 호랑이의 생태에 대한 사진 자료와 관련 민족신화를 수집했고, 이를 책으로 내려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기성씨의 뜻에 따라 19일 오전 발인 후 기성씨의 시신을 강남성모병원에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키로 했다.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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