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가 바로 날개없는 천사”

  • 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랍니다.” 장애아 5명을 입양해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을 베푸는 윤정희(뒤쪽 오른쪽), 김상훈 씨 부부의 가족사진. 아이들 이름은 왼쪽부터 하은, 사랑, 하민, 하선, 요한. 특히 하선이는 얼굴이 작고 깜찍해 유아 잡지 표지 모델로도 등장했다고 한다. 사진 제공 코오롱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랍니다.” 장애아 5명을 입양해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을 베푸는 윤정희(뒤쪽 오른쪽), 김상훈 씨 부부의 가족사진. 아이들 이름은 왼쪽부터 하은, 사랑, 하민, 하선, 요한. 특히 하선이는 얼굴이 작고 깜찍해 유아 잡지 표지 모델로도 등장했다고 한다. 사진 제공 코오롱
장애아 5명 입양… 집 개조해 무료 공부방으로… 작년엔 신장기증까지…

‘2남 3녀’를 둔 윤정희(43·여) 씨. 사람들은 요즘 보기 드문 다산(多産) 가정이라며 놀란다. 그런데 그의 아이들이 베트남계 장애아 1명을 포함해 5명의 입양 장애아들인 것을 알고선 더 놀란다.

윤 씨는 대전 중구 용두동에서 자신의 집을 개조해 만든 무료 공부방인 ‘함께하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중구청이 음식을 지원하는 것을 빼고는 모두 윤 씨 부부가 비용을 댄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최근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신청을 할 정도로 그의 생활은 ‘금전적으로’ 팍팍하다. 그런 윤 씨가 24일 코오롱그룹이 주는 ‘우정 선행상’ 대상을 받았다.

○ 베푸는 삶이 만들어 준 가정

“친정 엄마 영향이 컸어요. 장구를 치셨는데, 대전의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상가 건물에 세를 얻어 장구와 노래를 가르쳐 드렸어요. 공짜 식사도 대접했지요. 초등학교 때는 그런 엄마가 얼마나 싫었는지….”

하지만 윤 씨는 ‘그 엄마의 딸’이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충남 공주시 동곡요양원에서 본격적으로 자원봉사에 들어가 2년 동안 중증장애아들과 생활했다.

윤 씨는 그곳에서 친구 소개로 당시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 김상훈(50) 씨를 만났다.

지금은 목사로 변신한 김 씨는 “당시 장애아를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일부러 동곡요양원을 찾아갔었다”며 “천사 같은 윤 씨의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결혼 후 계속되는 유산으로 아이를 갖기 힘들게 되자 입양을 선택했다. 2000년 5월 5일 하은이(12·여)와 하선이(11·여) 자매를 입양했다.

“사실 처음부터 장애아 입양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에요. 집에 와서 보니 하은이는 눈동자가 바깥으로 몰리는 ‘간헐성외사시’ 증세를 보였고, 하선이는 기관지염을 앓았지요.”

아이들을 정성껏 보살피면서 윤 씨 부부는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후 입술갈림증(구순열)으로 괴로워하던 하민이(7·여), 퇴행성 발달장애를 겪는 요한이(6), 심각한 안짱다리로 걷지 못하던 사랑이(5) 등 3명의 장애아 입양으로 이어졌다.

○ ‘기적을 주셔 감사합니다’

하선이는 폐가 좋지 않아 기침을 달고 살았다. 정밀검진 결과 폐 한쪽이 제 기능을 못해 이식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폐가 자라고 있어 15세가 될 때까지는 약물치료에 의지해야 했다. 윤 씨는 ‘우리 하선이만 살려주시면 저도 다른 생명을 살리겠습니다’ 하고 기도했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느 날 하선이가 흡입기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운동장을 뛰어다닐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의사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하선이가 건강해지자 한편으로는 겁도 났어요. 제가 마음속으로 한 약속을 지키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죠.”

“아이들 맘껏 배울수 있게 복지관 있었으면”

윤 씨는 지난해 5월 신장 기증 의사를 밝혔다. 그로부터 다섯 달 후, 마침내 조직 반응이 일치하는 환자를 만났다. 그 환자는 30년 동안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하며 힘겹게 살아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 환자에게 윤 씨는 자신의 신장을 내 줬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남편은 윤 씨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렸다.

○ 45명 아이들의 엄마

2005년 6월 윤 씨 부부는 무료 공부방을 열었다. 이곳에는 대부분 힘들게 사는 맞벌이 가정이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온다. 어려서부터 부모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을 윤 씨는 친자식처럼 대했다. 40명 아이들은 모두 윤 씨를 ‘엄마’라고 부른다.

남편 김 씨는 이런 윤 씨를 “남자인 저보다 훨씬 대단한 여자”라고 했다. 베풀며 사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아는 여자라고도 했다.

윤 씨에게 소원을 물었다.

“사랑스러운 아들딸들과 저만 보면 웃는 남편이 있어 다른 소원은 없어요. 아, 아니다. 용두동에 아이들을 위한 복지관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배울 수 있었으면 해서요.”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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