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문화도 월드컵시대]“TV드라마선 안전벨트 안매나?”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9시 51분


#사례1

SBS 드라마 ‘로펌’. 영훈(송승헌 분)과 최장군(소지섭 분)이 사채업자(장항선 분)의 사무실에서 양주를 마신 뒤 건물 밖으로 나와 잠시 얘기를 한 뒤 급히 차를 타고 떠난다.

#사례2

MBC 드라마 ‘네자매 이야기’. 유진(채림 분)과 준하(김찬우 분)가 운전 중 대화를 하는데 조수석의 유진은 안전벨트를 착용했으나 운전자인 준하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사례3

KBS 드라마시티 ‘러브 미 텐더’. 주인공 준호가 뒷 자리에 헬맷을 쓰지 않은 영주를 앉히고 오토바이를 탄다. 교통경찰관에 적발되자 이번에는 영주가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고 곡예운전을 한다.

이들 사례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올 6월 12일부터 2주간 공중파 TV 프로그램을 분석한 뒤 발표한 ‘대중매체에 나타난 안전의식 불감증 사례 연구’ 중 교통안전을 무시한 것이다.

이 중 드라마에서 지적된 교통안전을 무시한 사례는 25건으로 다른 프로그램(10여건)보다 훨씬 많았다.

이 협의회 이은경 간사는 “교통안전 무시 사례가 98년 조사 때(60여건)보다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 평균 2건씩 등장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제작진이 무성의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안전벨트 착용은 올 3월부터 경찰이 집중 단속하고 있는 사안인데도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장면이 속출하는 것은 스토리 전개상의 필요성을 뛰어넘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이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임평남 소장은 “대중매체가 지닌 파급력을 감안할 때 드라마나 광고 등에서 안전벨트 미착용 등을 사소하게 취급해선 안된다”며 “98년과는 달리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사례가 이번 조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제작진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이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위원회는 교통 안전 불감증 사례 등에 대해 제대로 감독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안전벨트 미착용 장면 등은 방송법상 ‘준법정신 위반’에 해당돼 주의나 경고 등의 제재를 받게 돼 있다. 하지만 방송위 한 관계자는 “안전벨트 미착용 사례 등은 흔한 것이 아니며 최근 1년 동안 그와 관련돼 제재를 내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교통 안전 불감증 사례는 TV 광고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한 자동차 정비업체의 광고에는 “운전은 한다” “차는 모른다”라고 말하는 여성 탤런트가 차량을 사거리에 정차시킨 채 보닛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또 휴대전화 관련 업체 광고에서는 남자가 여자 친구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빠르게 몰던 중 뒷 자리에 있는 여자 친구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 ‘위반 사례’가 자주 눈에 띈다.

한편 최근 TV에는 교통 관련 공익광고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 공익광고는 △집에 일찍 오겠다고 딸아이와 약속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구급차에 실리고 △택시를 탄 한 외국인이 난폭 과속운전으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고통받다가 결국 도로 위에 내리는 장면 등을 담고 있다.

현재 이같은 공익광고는 공익광고협의회와 손해보험협회 교통안전공단 등에 의해 제작되고 있다.

공익광고협의회는 각 방송사로부터 총 방영시간의 0.16%를 배정받아 교통 기초질서 등을 소재로 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또 손해보험협회는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올 7∼9월 석달간 공익광고를 1000여회 방송했다.

그러나 국내 교통 관련 공익광고는 선진국에 비해 방영시간은 크게 부족하지 않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쨍그랑’ 같은 유리잔 깨지는 소리나 난폭 운전한 차량에서 내리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개’라는 등의 부정적인 방식의 광고는 시청자들에게 충격은 줄 수 있어도 자성과 행동 변화를 유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발한 아이디어에만 의존한 광고보다는 ‘가족을 위해서 과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인식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는 공익광고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자문위원단〓내남정(손해보험협회 상무)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국무총리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 전문위원)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김태환(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장)

▽특별취재팀〓최성진차장(이슈부 환경복지팀장) 구자룡(경제부) 서정보(문화부) 이종훈(국제부) 송진흡 남경현(이슈부 메트로팀) 신석호 최호원기자(사회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리젠트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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