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내-외과 교수들도 脫대학병원 바람

  • 입력 2001년 10월 22일 18시 48분


최근 대학병원의 ‘메이저과’로 불리는 내과와 외과 교수들이 잇따라 교수직을 그만두고 있어 향후 대학병원의 진료 및 전문인력 양성 등에 큰 차질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된다.

전통적으로 대학병원의 연구 및 진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내과와 외과 교수들이 과중한 업무와 낮은 보수 등을 이유로 개원의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22일 본보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올 들어 병원을 떠난 메이저과 교수들은 울산대 의대 서울중앙병원 내과 1명, 고려대 안산병원 외과 2명, 고려대 안암병원과 가톨릭대의대 강남성모병원 내과 각 1명, 가천의대 중앙길병원(인천) 내과 1명 등이다.

▽교수들의 병원 이탈 이유〓병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 1년간 59곳의 종합병원 전문의 총 1957명 중 477명(24.4%)이 그만둔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초 K대 의대 내과 교수직을 사퇴하고 지난달 서울 성동구에 개원한 송모 원장은 “의약분업 이후 지원이 대폭 줄어 연구 여건이 매우 열악해졌다”며 “게다가 올해부터 연봉제 도입으로 퇴직금마저 사라져 개원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직을 유지했으면 관련 학회 차기 회장이 될 만큼 널리 알려진 실력파다.

이들이 병원을 떠난 것은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병원들간 환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교수들이 진료일의 경우 2∼3분에 1명꼴로 환자를 봐야 하는 등 노동 강도가 높아진 것도 한 요인으로 풀이됐다.

서울 B병원 외과 교수직을 그만두고 개원을 준비 중인 서모 원장은 “빡빡한 진료 일정에 각종 학회 준비 등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환자불편 및 전문인력 양성 차질〓이들이 사직함에 따라 남은 의사들은 더욱 힘들어졌다. 사직한 교수들과 같은 질환을 담당하는 다른 의사는 하루 200여명의 환자를 1, 2분에 한 명꼴로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진료의 질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

갑상샘 질환을 앓고 있는 김모씨(45·여·대구 남구 대명동)는 최근 “진료를 받으러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왔는데 처음 진찰한 대학병원 의사가 1분만에 진료를 끝내 병을 제대로 보았는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메이저과 교수들의 잇단 사직으로 레지던트 등 전문인력 양성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의 K병원 교육수련 분야 관계자는 “내과나 외과의 경우 교수 1명이 그만두면 당장 전공의 정원 책정에서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메이저과의 경우 병원협회가 매년 병원별로 책정하는 레지던트는 통상 교수 인원에서 2명을 뺀 수치로 교수가 2명밖에 안 되는 병원은 사실상 레지던트를 뽑지 못하게 된다.

특히 대학병원 등에서 내시경 전문의가 그만둘 경우 해당 전문의가 충원될 때까지 내과 레지던트들이 내시경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는 등 상당한 차질이 빚어진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은 교수들이 금방 충원되지만 중소 규모의 병원이나 지방에 있는 종합병원의 경우 1년이 넘어도 교수를 충원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기타 문제점〓또 메이저과 중견 교수들의 이탈현상 가속화로 최근 병원 경영도 상당히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수가 사직하면 관련 환자들도 그동안 진료받던 병원을 빠져나가는 데다 교수들의 이탈 현상을 막기 위해 자꾸 급여를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

그러나 많은 의사들은 무조건 대학병원을 떠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무작정 개원했다가 적자 누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J병원 내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올 5월에 그만두고 최근 서울 강남구에 개원한 안모 원장은 “요즘 교수직을 그만두고 개원하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며 초기에는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의사들은 “요즘에는 개원의 사이에서도 워낙 경쟁이 치열해 내과는 위내시경 초음파검사 신장클리닉 등이, 내분비질환 외과는 유방클리닉 대장항문전문병원 등 전문클리닉이 아니면 개원해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진한기자·의사>liked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