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2모작]설문조사원 여현길 씨

  • Array
  • 입력 2010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매일 사람 만나 얘기하고 마음 나누고…
설문조사, 전공이었던 ‘영업’과 비슷”

일, 나이 떠나 의무이자 권리
설문조사 분야엔 나이제한 없어
일흔 넘어도 계속 이 일 할 것”

여현길 씨가 12일 서울 관악구 신대방2동에 있는 한 업체를 방문해 업체 관계자와 설문 항목을 놓고 대화하고 있다. 그는 현재 지식경제부의 산업기술인력 수급 동향 실태조사를 맡아 관악구와 동작구 등에 있는 업체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변영욱 기자
여현길 씨가 12일 서울 관악구 신대방2동에 있는 한 업체를 방문해 업체 관계자와 설문 항목을 놓고 대화하고 있다. 그는 현재 지식경제부의 산업기술인력 수급 동향 실태조사를 맡아 관악구와 동작구 등에 있는 업체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변영욱 기자
《정년퇴직 이후에 일자리를 잡기 힘들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도 취업난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60대의 구직자들을 반기는 직장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은퇴자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객관적인 변수라면 은퇴자 자신의 생각은 주관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특히 현역 시절에 국내외를 오가며 눈부시게 활동했던 경력을 지녔다면 은퇴 이후 돌아올 만한 일자리가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시니어클럽 소속으로 설문조사원 활동을 하고 있는 여현길 씨(67)는 무역전선을 누볐던 과거의 경력을 아랑곳하지 않고 현재의 일을 만족스럽게 수행하고 있다.》○ 화려했던 무역 역군

여 씨는 1968년 기계장비를 수입하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첫 직장은 이공계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사용하는 실험 장비를 들여오는 일을 주로 했다. 그는 “유네스코의 쿠폰으로 장비를 수입하는 오퍼상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3년 반 정도 일하면서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자 외국계 회사로 일터를 옮겼다. 하는 일은 이전 직장과 비슷했지만 수입 대상지역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그는 한 차례 더 직장을 옮긴 뒤 대원무역이라는 회사를 직접 차렸다. 대형 공작기계를 수입해 고리원자력발전소 등에 납품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는 이 시기에 사장 신분으로 전시회가 열리는 미국 등을 다니며 활동반경을 크게 넓혔다. 그는 “그 시절에 해외를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지금은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착실하게 성장하던 회사는 1979년 일어난 10·26사태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대통령 유고로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공작기계를 필요로 하던 프로젝트들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 없이 월급쟁이로 다시 돌아갔다. 이때 입사한 회사는 미국 기업과 제휴해 나선형 배수관을 생산하는 라인을 운영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나선형 배수관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이 번창했고 그 역시 영업상무로 바쁘게 뛰어다녔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국내 업체들이 나오면서 회사 생활도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2005년 62세로 일을 그만둘 때까지 37년간 직장인으로, 사업가로 열심히 일했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설문조사 일에 감사

그는 현역 시절 노후를 준비하지 않았다. “내가 하던 일을 영원히 계속할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렇다 보니 6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아주 어려웠다. 동년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직장 경력과 경영지식을 지녔고 견문도 넓었으며 영어 실력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하루하루를 덧없이 보내던 중 2007년 우연히 안내장을 보고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노인일자리전시회를 찾아갔고 강남시니어클럽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마침내 2008년 3월 설문조사원일을 해보겠느냐는 연락이 와 2008년 11월부터 교육을 받은 뒤 지난해 설문조사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2009년에 노동부의 ‘작업환경 실태조사’를 수행했고 올해는 행정안전부의 ‘정보화 통계조사’와 지식경제부의 ‘산업기술인력 수급동향 실태조사’를 맡고 있다. 보통 오전 8시 반에 집을 나서 업체 10여 곳을 방문해 설문을 작성한 뒤 오후 5시경에 귀가한다. 집에서는 설문자료를 정리하고 다음 날 방문할 업체 목록을 점검하다 보면 어느덧 취침시간이 된다.

그는 “지난해에는 업체에 전해줄 책자를 넣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다 디스크 증상이 생겨 한때 내근을 하기도 했다”며 “설문조사 일은 성격이 내성적이면 하기 힘들지만 나처럼 영업으로 단련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는 일감이 꾸준히 있는 편이고 나이 제한도 없는 데다 경력이 많을수록 일을 잘하기 때문에 우대해준다. 그는 “일흔이 넘더라도 일감을 주기만 한다면 이 일을 하겠다”며 “일을 하는 것은 나이를 떠나 의무이자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강창희 소장의 한마디
여현길 씨가 6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수입을 얻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활자세 덕분이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내가 어떤 사람인데…’ 같은 생각을 버리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활동하는 것이다. 그는 정기예금 외에는 특별한 재테크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시기에 예금만으로는 재산을 유지하기 어렵다. 매월 적은 돈이라도 적립식펀드 투자로 저금리와 물가상승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