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대한전선 5년만에 기자간담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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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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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CEO와 다시 뛰자”
재무약정 졸업 의지 다져

서울 남대문시장 뒤편으로 오래된 건물이 한 채 있습니다. 1층에는 ‘할리스커피’가 있는데, 그 위로는 아무런 간판도 없습니다. 이 건물은 1955년 설립된 대한전선이 1978년 지은 사옥입니다.

간판, 적자, 홍보팀. 대한전선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세 가지를 몰랐습니다. 스스로 ‘3무(三無)’ 회사라고 부를 정도였죠. 하지만 53년 동안 지속된 연속 흑자경영 기록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09년 첫 적자를 보며 깨집니다. 홍보팀도 2005년 생겼습니다. 2004년 최고경영자(CEO)였던 설원량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홍보팀도 만들었던 겁니다.

하지만 회사 간판은 여전히 없습니다. 전력선이나 통신선을 파는 걸 주력으로 하는 회사가 굳이 간판을 내걸고 일반인에게 회사를 알릴 필요가 없다는 실용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접견실의 가죽 소파도 설 전 회장이 쓰던 것을 수십 년째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자린고비 같지만 경영은 공격적이었습니다. 대한전선은 전선산업의 강자인 유럽 기업과 정면승부를 하겠다며 이탈리아 전선회사의 지분을 사들이고 미국 인도 등 해외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인수합병(M&A)으로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며 계열사도 한때 40여 개로 늘렸죠. 하지만 이런 공격 경영은 세계 금융위기 앞에서 ‘비수’가 됐습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리며 계열사인 남광토건이 채권단 공동관리대상으로 들어가는 등 어려움을 겪었죠.

15일 대한전선은 손관호 전 SK건설 부회장을 새 CEO로 영입하고 회장 취임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5년 만의 기자간담회입니다. 손 회장은 “대한전선의 가장 큰 문제는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오직 성장만 바라봤던 것”이라고 지적하며 “채권단과 맺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올해 안에 졸업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이 회사는 현재 빚이 1조9000억 원인데 약 4000억 원을 줄여야만 이 계획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업을 잘해 갚기에는 너무 큰 규모라 보유한 자산을 팔아야만 합니다. 손 회장은 “필요하다면 내 살을 일부 도려내는 아픔도 감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만난 대한전선 경영진은 SK그룹의 ‘재무통’으로 유명했던 손 회장과 함께 “이제 체제를 정비했으니 다시 한 번 뛰어보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국 기업사에 ‘50년 연속 흑자경영’이란 기록을 세운 상장기업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드뭅니다. 대한전선이 새 CEO와 함께 빨리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를 기대합니다.

김상훈 산업부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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