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김상철/도로 하나에도 ‘선진국의 냄새’

  • 입력 2004년 7월 11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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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을 재촉하는 장맛비가 내리던 날 휴가차 3년간 머물렀던 한국을 다시 찾은 독일인 마티아스 헨켈을 만났다.

그는 비 때문에 곳곳이 파인 차도와 보도를 가리키며 “안전사고가 걱정된다”며 “기본을 무시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와 헤어진 다음 날 유심히 도로와 보도 상태를 살폈다. 관찰자의 태도로 보니 자연재해로 볼 수 없는 통상 수준의 비에 도로 곳곳이 꺼지고 보도가 내려앉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에 보니 고속도로의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곳곳이 차량 무게를 못 이겨 바퀴에 눌린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다. 배수가 되지 않아 어떤 곳에는 웅덩이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승용차가 물 위로 뜨면서 제동을 못해 처참한 사고를 내는 것도 목격했다.

몇 해 전 후진국에서나 있을 것 같던 일들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에서 발생했다.

한강 다리가 통째로 내려앉아 물 속으로 사라지고, 삼풍백화점이 폭삭 주저앉고, 서울 도심에서 도시가스관이 폭발하고, 물이 줄줄 새는 아파트가 사용승인을 받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기초부터 튼튼히 하고 안전의식을 갖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른바 ‘대충 대충’ 문화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독일에서 근무할 때 높낮이가 1, 2cm 정도 어긋난 보도 한 곳을 공사하는 현장을 볼 기회가 있었다. 밤에 주민이 걷다 넘어져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마이스터(장인·匠人) 2명이 먼저 가로 세로 약 2m 크기로 안전선을 친 후 땅을 파냈다. 보도 아랫부분 깊이 1m 정도의 단면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밑에서부터 큰 자갈, 작은 자갈, 모래, 숯(소금) 모래, 흙, 보도석 등이 순서대로 다져져 있었다. 다시 차례대로 다지고 굳히는 시간까지 감안해 공사는 2주일 이상 계속됐다.

마이스터는 “이렇게 하면 최소한 40년은 손대지 않고 쓸 수 있다”며 “고속도로도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데 땅 다지기에만 2, 3년 걸린다”고 말했다.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는 없다. 국민 모두의 의식 전환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의지와 인내가 요구되는 대장정(大長征)이다. 이 길의 초석을 다지고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과제다. 근본부터 다시 점검해 반석 위에서 성장의 엔진을 다시 가동해야 하는 것이다.

독일의 힘의 원천이 기초부터 완벽하게 다져 완성품을 만드는 마이스터 정신에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장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실천해야 선진국이 되지 않을까.

김상철 경제부차장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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