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허승호/두 ‘세계화 포럼’ 어디서 만날까

  • 입력 2002년 2월 3일 17시 23분


경제학은 ‘성장이 둔화하면 실업이 늘어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지난해 3·4분기 이후 한국에서는 성장률과 실업률이 동반하락하고 있다. 이런 반(反)교과서적 현상을 놓고 고심하던 한국은행은 “고용사정이 계속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취업을 아예 포기한 ‘실망 실업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실업에는 숫자로만 표시할 수 없는, 심리적인 속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실업은 ‘사람의 문제’라는 점에서 성장률, 국제수지 등 순수 경제지표와는 무게가 다르다. 실업은 개인의 생존, 공동체 구성원의 통합, 사회의 안정 등과 직결된 사회·정치적 사안이다. 수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해고위협이 경제효율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 촉매제임은 분명하다. 또 생산력의 발전을 묶어두려는 어떠한 노력도 결국 실패했음을 역사는 가르친다. 시장의 승리는 필연적인 듯 보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기업은 퇴출될 수 있지만 인간의 삶은 함부로 퇴출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임금근로자에게 해고 경험은 스스로의 자긍심이나 인간적 존엄성을 송두리째 박탈 당하는 모멸일 수 있다. 재(再)고용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은 한국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껏 인류는 새로운 생존환경을 만날 때마다 자신과 세상을 보는 눈을 변화시켜 왔다. 산업혁명을 준비하면서 이성과 합리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임노동자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하자 ‘혁명하는 인간상’이 대두했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실존성에 눈을 떴고, 근대성과 합리성의 무차별적 지배에 반발해 포스트모더니즘에도 기웃거렸다.

이제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또 한번 필요한 때가 아닌가. 무한경쟁이라는 전혀 낯선 생존조건 속에서 상처 받은 인간을 어루만지고 보듬어 우리 이웃의 자리에 되돌려놓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접근이 필요하지 않은가.

현재 자본주의의 양대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세계경제포럼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부터 4일까지 열린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 조지 소로스 헤지펀드 회장, 폴 오닐 미 재무장관 등 세계화를 대표하는 면면들이 참석자다.

이에 맞서 반(反)세계화 진영의 논객들은 지난달 31일부터 5일까지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을 연다. 그린피스 국제인권연맹 국제사면위원회 등이 참석하고 있다.

세계와 미래에 대한 시각을 전혀 달리하는 두 포럼에서 ‘효율성과 인간성의 딜레마’라는 담론이 어떻게 전개·정리될지 궁금하다.

허승호/경제부 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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