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CJ그룹 새 채용방식 눈길

  • 입력 2002년 9월 17일 18시 33분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속은 후련합니다.”(응시자 이모씨)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과장이나 거짓말로 스스로 함정에 빠질 수 있어요.”(서강대 취업준비 사이트에 올려진 CJ 면접 후기 가운데)

올 4월 CJ그룹(전 제일제당그룹)은 새로운 채용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실시하기 직전 6개월 동안 이 그룹은 230명을 뽑았다. 그들 가운데 11명(4.8%)이 입사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새 방식을 도입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경력직을 합쳐 모두 110명을 뽑았으나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다른 직장으로 옮긴 사람은 없다.

‘이직률 제로(0)’와 ‘최고 인재 발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이 그룹의 새로운 채용방식을 알아봤다.

▽정성적인 것의 계량화〓‘서류 전형→필기시험·인성검사→실무면접→임원면접.’ 많은 기업들의 채용방식이다. 일부 기업은 면접 때 합숙을 하거나 인턴제도 등을 도입해 지원자의 능력을 정확히 판별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면접관의 ‘주관’과 ‘편견’을 없애기는 쉽지 않다.

CJ의 새 채용방식은 이를 계량화한 게 특징이다. 결격자만 제외하는 간단한 수준의 서류전형을 거쳐 모든 응시자는 ‘비즈니스 상황에서의 가치판단’이라는 시험을 본다.

20분 동안 4지 선다형 문제 25개를 푸는 간단한 과정이지만 여기에는 이 그룹이 추구하는 조직가치와 지원자의 개인가치가 서로 융합하는지를 재는 척도가 숨어 있다.

이 그룹 인사팀 조성형(趙聖衡) 부장은 “CJ의 비전에 맞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1차 필터링 과정으로 다른 기업의 1차 면접을 시험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상적인 것을 어떻게 점수로 매길 수 있을까. 이 그룹은 ‘영원한 벤처정신’ 등 그룹이 추구하는 가치를 아는 임직원 12명을 선정했다. 직급은 임원부터 대리급까지.

이들은 한달여 동안 채용전문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아 52개 상황을 설정했고 각 상황에 대한 반응을 유형화했다. 이 중 ‘가장 CJ적’ 또는 ‘가장 CJ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만장일치가 된 25개 상황을 문제로 만들었다. ‘CJ인(人)’이면 누구나 특정 문제에 대해 정답이 일치하는 기업문화의 객관화를 시도한 것.

조 부장은 “이 시험을 본 1500여명을 분석하면 어느 문제에서도 편중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사람마다 정답이 다른 만큼 시험의 변별력은 뚜렷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1차 면접이어서 결국 결격사유가 없는 응시자는 누구나 다른 기업이면 1차 면접에 해당하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

채용전문 인터넷사이트 잡코리아 김화수(金和秀) 대표는 “누가 면접관이든 응시자에 대한 평가는 똑 같아야 한다는 게 면접의 목표”라면서 “CJ는 그동안 객관적인 점수로 매기기 어려웠던 면접에 계량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로 아는 게 ‘윈윈(Win-Win)’의 토대〓이 점수와 IQ테스트 비슷한 인지능력 시험 결과에 따라 얼굴을 맞대는 ‘역량 면접’을 볼 수 있다.

채용 목표인원이 차면 역량면접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만큼 점수가 낮을수록 입사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실무자급의 면접관 2명이 응시자 1명을 상대로 1시간에서 1시간30분 동안 인터뷰를 갖는다.

인사채용 관련 컨설팅업체인 윌슨러닝 코리아 권병옥(權炳玉) 부사장은 “면접(은 기업 쪽에서는 지원자 가운데 인재를 선별하는 과정으로, 지원자 쪽에서는 기업에 대해 평소 간접적으로 알고 있던 정보를 확인하는 기회로 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단계에도 계량화를 도입했다. 외부 컨설팅업체와 협력해 응시자가 지원한 5개 직군, 34개 전문 기능에 따라 문제를 약간씩 달리해 130여개 질문을 만들고 채점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홈페이지에 다양한 직무활동을 충분히 소개하는 것도 눈에 띈다. 직무별로 실무자가 하루 일과를 자세히 소개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지원하는 ‘패착(敗着)’을 줄이는 게 목적. 입사 지원서에 회사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을 적어달라는 ‘친절한’ 문항도 특색이다.

▽절반의 성공, 하지만…〓CJ는 내부적으로 이번 시도가 안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양기(崔暘基) 인사담당 상무는 “사내 평가를 종합하면 일단 제 궤도에는 진입했다”면서 “60여 개 기업으로부터 벤치마킹 제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최종 성공 여부를 가름하기까지는 아직 이르다. 이들 신입 사원에 대한 근무평가는 내년 말에 나온다.

외부의 시각도 비슷하다. 가톨릭대학 경영학부 이동현(李東炫) 교수는 “기업이 스스로의 인재상을 구축하고 이에 맞춰 채용방식을 바꾼 것은 국내에서는 참 드문 일”이라고 평가한 뒤 “목적한 것을 이룰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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