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우뚝 서야 정치가 선다]<5·끝> “민주당 싸가지 없다” 운동권 친구들조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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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 야당은 독재시대 개념… 실력있는 야당으로 승부해야”

민주통합당 초선 의원인 최원식 의원은 2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의 진로에 대해 중국 고전 ‘중용’의 ‘시중(時中)’을 인용해 “중도는 가운데 길을 걸으라는 뜻이 아니라 시대상황, 시대정신에 맞춰 민생을 파고들라는 것이다.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민주통합당 초선 의원인 최원식 의원은 2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의 진로에 대해 중국 고전 ‘중용’의 ‘시중(時中)’을 인용해 “중도는 가운데 길을 걸으라는 뜻이 아니라 시대상황, 시대정신에 맞춰 민생을 파고들라는 것이다.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민주통합당 초선 의원인 최원식 의원(50·인천 계양을)은 지난해 4월 국회에 들어오기 전 왕성한 시민사회 활동을 했다. 변호사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등 지역의 굵직한 소송들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빈민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고(故) 제정구 전 의원과는 동서지간. 누구보다 시민사회의 중요성, 대중과의 호흡을 이해할 법하다. 21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만난 최 의원은 정당과 시민사회의 관계에 대해 “협조는 필요하지만 서로의 가치와 역할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정당은 조정 기능이 중요하다. 시민사회가 정치에 너무 깊이 간여하거나 정당화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
―시민사회를 오래 경험했다. 국회의원이 돼 보니 무엇이 정당과 다르던가.

“시민사회는 국민 반응도가 높은 의제를 내세워 활동한다. 정당은 시민사회 등의 의견을 수렴하되 전체 이익에 맞게 조정하고 제도화한다. 시민사회는 의제를 만들지만, 정당은 각계의 목소리를 모아 제도화하고 법률화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데모(시위)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 때 민주당에선 의원들이 주축이 된 ‘민주캠프’와 시민들이 중심이 된 ‘시민캠프’가 대등한 관계로 가동됐는데….

“취지는 당과 시민사회가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이 소외되면서 갈등관계가 됐다. 예를 들어 행사장에 가면 시민사회 인사가 연단에 올라 당 사람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시민사회가 상위개념이 됐다. 또 시민캠프는 시민을 내세웠지만 진짜 시민이 없었다. 총선 공천 탈락자 등이 시민의 이름을 빌려 참여했다. 시너지가 아닌 마이너스 효과를 낼 수밖에…. 생각해봐야 한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나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 어떻게 시민사회인가. 시민사회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정치단체 아니냐.”

―문재인 전 대통령 후보는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만으로는 새 정치,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시민사회가 당을 견인해 달라’고도 했는데….

“민주당이 문제가 있는데 그 답이 시민사회라고 하려면 새로운 정당론을 내놔야죠. 시민사회와 정당의 바람직한 관계는 시민사회가 정당을 견인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지도자는 자신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친노(친노무현) 책임론에 대해선….

“노무현 정신은 특권과 기득권 타파, 국민들의 참여다. 지금 친노라고 불리는 분들이 진짜 노무현 정신을 잘 알고 있을까…. 친노라 불리는 분들은 노무현 정신을 패권주의로 깎아내리고 있다. 안타깝다.”

―의원으로서 대선을 처음 경험했다. 직접 만나 본 국민들은 무엇을 원하던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워낙 뜨거웠다. ‘왜 이렇게 민주당이 못하느냐’고 혼을 내면서도 ‘정권교체는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 특히 호남 지역을 가 보니 민주당과 호남의 관계는 바람 난 남편과 지고지순한 마누라 관계 같더라. 동네 사람들이 ‘남편 역할 못하면서 큰소리만 친다’고 남편을 흉보고 욕해도 ‘그래도 내 남편 아니냐’고 감싸는 마누라 같더라. 지역 정책도 내놓지 않고, 대선후보가 자주 찾지도 않았는데도 당이 ‘그래도 우리 아니면 누구를 지지하나’ 하는 식의 오만한 태도를 보여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야당은 개혁성과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워야 하는데….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해 왔다. 그만큼 새누리당보다 2∼3배는 높은 개혁성과 도덕성을 갖춰야 하는데 당장 국회의원 연금이나 외유(外遊) 문제만 해도 미흡했다. 국회의원에게 해외 출장은 필요하지만 언제, 왜가 중요한데 이걸 간과했다.”

―4·11총선 공천 잣대가 새누리당에 비해 느슨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데….

“명쾌한 기준을 제시하지도, 지키지도 못했다. 전략공천도 문제였다. 당시 총선 지도부가 곳곳에 전략공천을 강행했지만 실상은 계파공천이었다. 그 속이 빤히 보였다. 50년 정도는 상향식 공천을 해야 계파가 사라질 것 같다.”

―과거 민주당은 초선들이 당내 기득권 폐지, 이른바 정풍(整風) 운동에 매진했다. 지금 민주당 초선들은 이렇다 할 목소리가 없는 것 같은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제왕적 리더십’이란 얘기도 나오지만 DJ는 소장파들이 핵심 측근의 2선 후퇴 등을 공개적으로 거론해도 이를 수용하고 적절히 활용했다. 일종의 ‘건설적 이전투구’의 환경을 조성한 거다. 그런데 당 지도부는 줄을 서야 공천도 해줬고, 당직도 나눠줬다. 특히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 결과는 심각하다. 이해찬 전 대표,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때 반대 발언이 나오면 ‘그만해!’란 식이었다. 의총 발언자, 발언 순서도 미리 정했다. 민주사회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그 집단을 풍부하게 하는 측면이 있는데 당의 간판들이 ‘단합’ ‘일사불란’을 내세우고 강조하니 초선 의원들이 제 의지를 포기한 측면이 있다. 당내 민주화가 절실하다. 초선 의원들이 공천의 신세를 빨리 잊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대선 평가,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준비 과정에서 초선 의원들이 진짜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의사를 내놓을 것으로 본다.”

―‘99% 국민을 위한 정당’을 골자로 한 현재 강령엔 동의하나….

“문제가 있다. 어느 계층을 대표한다는 것은 필요하지만 정당은 국민 모두를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나도 시민사회에서 활동할 때엔 반대했다. 그러나 한미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것이다. 전면 재검토는 현실성이 없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연일 ‘선명 야당’을 강조하고 있는데….

“선명 야당은 독재 시대 개념이다. 지금은 ‘실력 있는 야당’이 돼야 한다. 제정구 전 의원은 ‘독재와 싸우다 보니 우리도 닮아가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만의, 우리 진영만의 논리에서 벗어나 실력 있는 대안정당, 신뢰받는 정당으로 가야 한다. 진영 논리, 팬덤(팬그룹) 정치, 트위터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 샤우팅 마이너리티(적극적인 소수)에 경도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중심을 잡고 세대 간 이익을 조정해야 한다. 고전인 ‘중용(中庸)’은 ‘가운데 중’에 대해 ‘시중(時中)’을 설명하고 있다. ‘시대정신에 맞춰 민생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거다.”

―지난해 총선, 대선에서 ‘나는 꼼수다’ 등이 전면에 나서면서 50, 60대가 등을 돌렸다는 얘기가 많은데….

“나도 81학번(1981년 대학 입학)이어서 50대인데…(웃음). 과거 학생운동을 한 친구들조차 ‘민주당은 싸가지가 없다’고 한다. 정당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단위인데, 신뢰를 주지 못했다. 경제민주화만 해도 우리가 먼저 외쳤지만 새누리당이 더 잘할 것 같으니까 국민이 그쪽으로 간 거다.”

―이른바 ‘486’이다. 민주당의 486은 자기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나….

“나도 마찬가지지만 민주당 486은 (운동권이라는) 이력만 남은 것 같다. 그룹이라면 정파로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1971년 신한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DJ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내건 ‘40대 기수론’은 박정희 독재 시대에 안이한 유진산(당시 신민당 당수) 체제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시대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486에게선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다. 3월 말로 예상되는 전당대회 때 세대교체론을 들고나올 수도 있겠지만 쇄신 의지, 방향 같은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네이밍(486이란 이름)과 프로파간다(선전)는 사라져야 한다.”

―제정구 전 의원의 동서인데 ‘제정구 정신’에 비춰 볼 때 민주당은 어떻게 가야 하나….

“집사람이 제 전 의원 부인의 열한 살 아래 동생이다. 사실 동서지만 제 전 의원의 그릇을 따라가기 어렵다. 제 전 의원은 생전 독재와 치열하게 싸웠지만 독재를 넘어서는 공동체의 가치를 얘기했다. ‘적(敵)이라도 넘어지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울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도 자주 했다. 적을 적으로만 치부하는 데 그치지 말고 바로 세워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 부자를 비판하되 바로 세워야지 배제해서는 안 된다.”

[채널A 영상] ‘작은 청와대’ 끝까지 유지 가능할까? 우려되는 점은…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김호경 인턴기자· 한양대 법학과4  
#민주통합당#최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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