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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토요스케치]“순식간에 벗고 짐승처럼 절규하라… 절대 웃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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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8-17 03:00업데이트 2019-07-0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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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리스의 여성해방 전사 FEMEN, 佛 파리의 훈련캠프 가보니
가슴을 드러내는 시위로 유명한 여성인권 단체 ‘페멘’ 프랑스 지부의 벽에 ‘민중을 이끄는 페멘’이란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도심 가득 불타는 연기,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 위에 서 있는 여성들의 가슴 등에 ‘나는 자유다’ ‘나신의 전쟁’ 등 구호가 적혀 있다.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1830년의 7월 혁명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했다. 페멘 인터내셔널 제공
“그들은 우리에게 뜨거운 커피를 뿌렸어요. 순간 그것이 염산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무서웠지만 우리는 시위를 계속했습니다. 우리가 해산하지 않자 그들은 우리를 가리고 숨기려 했어요. 튀니지에선 여성이 공개적으로 가슴을 드러내는 걸 참지 못하기 때문이었죠.”(폴린 힐리어·26·페멘 프랑스 지부 활동가)

2011년 중동 민주화를 불러왔던 ‘아랍의 봄’에 이어 최근 이슬람권에서는 ‘페미니스트의 봄’이 이슈다. 가슴을 드러내는 기습시위로 유명한 토플리스 여성전사 그룹 ‘페멘(FEMEN)’을 지지하는 이슬람 여성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튀니지, 이집트 등 중동 국가 여성들은 몸에 정치적 구호를 적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가 하면, 유럽의 페멘 회원들이 중동지역에 원정 토플리스 시위를 감행해 아랍권 보수층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지고 있다.

2008년 우크라이나에서 탄생한 페멘은 지난해 파리로 중심 근거지를 옮기면서 유럽, 미국, 남미, 중동까지 세계 17개국 15만 명의 지지자를 거느릴 정도로 세력이 확산되고 있다. 파리에 있는 페멘 훈련캠프를 현장 취재했다.


“우리의 신은 여성이다.”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어 젖혀라.” 아름다운 화관을 머리에 쓰고 정치적 구호가 가득 적혀 있는 상반신을 노출하는 페멘의 시위를 두고 각국 정치지도자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페멘 측은 “기껏해야 옷을 벗고 구호를 외치는 평화시위를 왜 그렇게 폭력적으로 진압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라며 주먹을 불끈 쥔 채 우크라이나의 성매매 산업을 비판하는 토플리스 여성 전사들의 눈매가 매섭다. 페멘 인터내셔널 제공

‘왔노라, 벗었노라, 정복했노라’

파리 시내 북쪽 18구 몽마르트르 언덕 주변의 주택가 뒷골목. 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엔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긴다. 한쪽 구석에 어지럽게 낙서가 된 노란색 건물이 눈에 띈다. 예술가들이 점령하고 있는 폐쇄된 옛 극장 건물에는 ‘라부아르 모데른 파리지엔(Lavoir Moderne Parisienne)’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파리의 현대식 빨래터’라는 뜻의 이 이름은 피카소가 무명시절 가난한 화가들과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에 마련했던 화실 ‘바토-라부아르(세탁선)’에서 따온 것이다.

이 건물의 2층이 바로 페멘이 지난해 9월에 문을 연 국제 토플리스 여성전사 훈련캠프이다.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사전에 취재 약속을 했음에도 페멘의 파리 지부 회장인 인나 …첸코(24)와 수차례 통화를 하고, 기자 신분을 증명한 끝에야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저항은 우리의 사명! 가슴은 우리의 무기!’ ‘누드는 자유다!’

계단을 올라가니 각종 구호와 그림, 페멘을 상징하는 마크가 잔뜩 장식된 벽면 앞에서 회원 20여 명이 푸시업과 스트레칭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스페인, 독일, 남미, 중동 등 전 세계에서 찾아온 신입 토플리스 여성전사 지원자를 위한 훈련을 한다. 기초체력 훈련을 마친 그들은 2시간 동안 실제 시위현장과 똑같은 상황을 재현하며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했다.

“옷은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때 순식간에 벗어야 한다. 머리에 곧바로 화관을 써라. 구호를 외칠 땐 양발을 벌리고 당당하게 서라. 절대로 미소를 짓지 마라. 마음속의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라. 어느 순간에도 고개를 숙여선 안 된다. 끌려가더라도 시선은 언제나 카메라를 향하라. 그리고 야생동물처럼 절규하라!”

가냘픈 여성의 몸을 제지하는 중무장한 경찰들, 당황해하는 정치인, 끌려가면서도 카메라를 향해 끝까지 절규하는 여성 전사들의 몸짓…. 이들의 드라마틱한 퍼포먼스는 그 자체가 뜨거운 뉴스거리다. 이 때문에 이들의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에는 전 세계 사진기자는 물론이고 아마추어 사진가까지 총출동해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훈련캠프의 교관과 훈련생들은 실제 상황처럼 경찰 역할을 맡은 회원들이 인간 사슬을 만든 채 저항하는 회원들을 떼어내는 훈련을 하면서도 기자의 카메라를 향해 구호를 외치는 걸 잊지 않았다.

아랍권에 불어오는 ‘페미니스트의 봄’

페멘이 올해 국제뉴스의 관심사로 다시 떠오른 것은 이슬람권 여성의 인권문제에 적극 뛰어들면서부터다. 3월 튀니지의 페멘 지지 여성인 아미나 타일러(19)가 자신의 가슴에 아랍어로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적고, 상반신을 드러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히잡만 벗어도 큰일 나는 아랍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페멘은 구속된 타일러의 석방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토플리스 지하드(성전)’ 시위를 벌였다.

페멘 프랑스 지부 활동가인 폴린 힐리어(26)는 독일의 요제피네 비트와 프랑스 마르게리트 스테른 등 3명과 함께 5월 29일 튀니지 법무부 건물 앞에서 타일러의 석방을 촉구하는 토플리스 시위를 벌였다가 4개월의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당시 가슴에 페인트로 구호를 적은 여성들에게 한 남자가 코트를 던졌고, 사복 경찰이 와서 그들을 끌고 갔다고 한다. 힐리어는 “그들이 욕하고 총을 겨누며 우리를 끌고 갔다”며 “어두운 방 안에 갇힌 뒤 니캅을 쓴 여자 경찰이 와서 욕을 하며 우리 얼굴을 때렸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국제적 이슈로 번졌다. 유럽연합(EU)이 튀니지 여성의 석방을 위해 반라시위를 벌인 유럽 여성들에게 4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항의했다. 결국 힐리어를 비롯한 유럽 페멘 회원 3명은 1개월 만에 풀려났다.

페멘 프랑스 지부에는 현재 이집트, 튀니지 출신의 여성 회원도 토플리스 여성 전사로 활약하고 있다. 페멘의 일부 회원은 이슬람권 국가에서 채찍형이나 투석형을 받을 수 있는 기습 반라시위도 계획하고 있어 이슬람권과의 ‘문명의 충돌’ 우려도 제기된다. 힐리어는 “튀니지는 2011년 중동 민주화를 쟁취한 ‘아랍의 봄’을 촉발시켰던 나라”라며 “이제 튀니지는 아랍권의 새로운 ‘페미니스트의 봄’을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어 젖혀라

프랑스 파리 18구에 있는 페멘의 국제훈련 캠프에서 시위 퍼포먼스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하는 토플리스 여성 전사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오른쪽은 페멘 프랑스 지부가 있는 건물 ‘라부아르 모데른 파리지엔’의 외부.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페멘은 2008년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신데렐라를 꿈꾸며 고국을 떠났다가 사기꾼에게 속아 성매매의 함정에 빠져든 현실에 분노해 탄생했다. 초기에는 ‘우크라이나는 매음굴이 아니다’라는 포스터를 내걸고 자국내 섹스관광, 인신매매, 가정폭력, 남녀 간 임금 차별 등을 타파하는 시위를 벌여 왔다. 이후 정치 사회 분야로 영역을 넓혀 가부장제, 독재정치, 종교 억압 등에 광범위하게 저항하는 여성운동으로 진화했다.

페멘이 내세우는 전략인 ‘성 극단주의(Sextremist)’는 성(sex)과 극단주의(Extremism)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 가부장제의 통제 대상이었던 여성의 몸을 정치적 시위에 활용해 ‘남성 지배 시스템’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페멘 특유의 전략이 담긴 슬로건이다.

올해 4월 독일 하노버의 무역박람회장.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폴크스바겐 부스를 둘러보는 순간. 갑자기 페멘 회원들이 뛰어들어 “비열한 독재자!”라고 부르짖었다. 앞서 2월 이탈리아 총선 당시에는 ‘섹스 파티’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투표소를 찾았을 때도 페멘 회원 3명이 갑자기 상의를 벗어던지더니 “베를루스코니는 이제 그만!”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도 이 구호를 써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했다.

페멘의 시위는 늘 조직적이고 창조적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언론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시위를 하면서 곤봉과 방패를 든 경찰로 분장하는가 하면, 올해 2월 동성결혼법 통과를 앞두고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회원 9명이 상의를 벗은 채 성당에 있는 종을 치며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5월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유로 2012’ 개최를 반대하며 우승 트로피를 훔치려다 경찰에 체포되는 등 늘 새로운 볼거리와 화젯거리를 낳고 있다.

여성들의 반라시위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골칫거리 해프닝으로 취급된다. 각국마다 ‘훌리거니즘(hooliganism·폭력적 군중 혼란)’ 관련 법규를 적용해 시위를 해산하고 잠시 구금했다가 풀어준다. 그러나 러시아나 동유럽,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페멘 회원들이 시위를 벌였다가 경찰에 연행돼 고문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페멘 파리 지부 <첸코 회장은 “TV와 신문을 읽고 여성이 처한 억압된 현실에 대해 토론하면서 시위 아이템을 잡는다”며 “또한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어느 타이밍에 옷을 벗을 것인가, 가부장적 정치가들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차 위로 올라타기 위해 어떻게 점프를 할 것인가, 어떻게 계단을 오르고 철조망을 넘을 것인가 등 세밀한 퍼포먼스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다”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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