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함께 일하면… 인간은 점점 나태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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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봇의 협업 효과 연구
사람 간 협업, 팀워크 극대화해 창의적 결과 내
동료에게 기대면서 개인 역량 떨어지는 현상도
로봇과 일해도 의존하는 경향… 안전 문제 우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모습. 이 둘의 협업이 효율적인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모습. 이 둘의 협업이 효율적인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로봇이 점차 늘고 있다. 이미 로봇이 없는 제조업 현장은 상상하기 어려워졌고, 식당과 카페에서 서빙 로봇이나 바리스타 로봇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런 로봇의 사용은 인간과 로봇의 팀워크가 일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봇과 협업할 때 인간이 업무 태만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베를린공대 연구팀은 사람이 로봇과 함께 일할 경우 업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18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로봇&AI 프런티어스’에 공개했다.

● 인간-로봇 팀워크 연구는 이제 시작
사람들 간의 협업은 지금까지 연구 결과에서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영향이 함께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팀워크가 공대생의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있다. 홍익대와 부산대 공동연구팀이 국제학술지 ‘공학교육연구’에 2020년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공학 분야 과제 및 업무는 대체로 팀 단위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협업이 창의적 결과물을 이끌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팀워크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던 2022년 국립중앙의료원이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백서’에 따르면 의료진의 업무량이 크게 증가하면 구성원 간 업무 분담, 보상, 안전을 둘러싼 갈등이 함께 늘어난다. 이는 팀워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환자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처럼 사람 간 조직력은 일의 효율성, 창의성, 문제해결 능력 등에 다채롭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하지만 사람과 로봇의 팀워크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베를린공대 연구팀의 이번 연구가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배경이다.

또 집단이 함께 일을 할 때 개인의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소셜 로핑’(사회적 태만)이라고 한다. 동료들이 업무를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업무에 소홀해지는 현상이다. 동료가 일을 성실하게 잘 수행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거나,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집단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느끼거나, 책임이 분산된다고 생각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베를린공대 연구팀은 사람이 로봇과 일을 할 때도 소셜 로핑을 보이는지 확인했다.

● 로봇과 함께 일하는 사람, 주의력 떨어져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디틀린트 헬레네 시메크 연구원은 “함께 일을 하는 것은 선의의 경쟁으로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기여가 눈에 보이지 않아 반대로 동기부여를 상실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이번 연구는 사람의 파트너가 로봇일 때도 동기부여 효과가 나타나는지 살핀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회로기판의 결함을 검사하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42명의 참가자들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흐릿한 회로기판 이미지를 살폈다. 이 이미지 위에 마우스를 올려야만 선명한 이미지를 보고 결함을 찾아낼 수 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절반에게는 ‘판다’로 불리는 로봇이 한 번 검사를 진행한 회로기판을 확인하도록 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회로기판을 보며 오류가 있는지 조사하고 이를 표시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보고(셀프 보고)할 수 있게 했다.

실험을 진행한 결과 판다와 함께 일을 수행한 실험 참가자들은 과제 후반부로 갈수록 결함을 덜 발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0분간 진행한 작업의 초반부에는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했으나, 판다가 결함을 잘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뒤에는 덜 꼼꼼하게 살피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참가자들은 셀프 보고에서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였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이를 무의식적으로 로봇에 의존하며 일에 소홀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태도가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인의 성과가 드러나지 않거나 피드백이 주어지지 않는 교대근무 등에서 로봇과 같이 일을 할 때 개인의 업무 태만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 관련 분야의 작업 결과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실험실 환경에서 이뤄졌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사람과 로봇의 팀워크가 동기 상실로 이어지는지 확인하려면 실제 현장에서 로봇과 팀을 이뤄 일을 하는 숙련된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작업 환경에서 추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로봇#협업 효과#팀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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