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 장마, 단순히 기후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국내 연구팀, 슈퍼컴퓨터로 ‘한반도 장마 패턴 100년’ 분석해 보니
“기후변화가 미친 영향은 미미… 한반도 주변 대기 불안정이 원인
북서태평양 고기압의 발달로 수증기 많이 유입돼 생긴 현상”

올해는 1973년 기상청이 현대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늦게까지 이어진 장마로 기록되게 됐다. 역대 장마 최다 기록을 세운 8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올해는 1973년 기상청이 현대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늦게까지 이어진 장마로 기록되게 됐다. 역대 장마 최다 기록을 세운 8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올해는 장마가 이례적으로 긴 해였다. 1973년 이후 가장 길었다. 여기에 9월까지 대형 태풍이 한반도를 잇달아 강타하고 지역을 가리지 않는 게릴라성 폭우까지 쏟아지면서 기록적인 강수량을 보였다. 올 장마가 이례적인 특성을 보인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북극에서의 이상 고온 현상이 지목됐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이 실제로 있긴 하지만 최근 100년간 한반도 장마에 미친 영향은 사실상 미미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진짜 원인으로는 한반도 주변 지역의 국지적 대기 불안정이 꼽혔다. 무엇보다 모든 이상 기상 현상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돌리는 태도는 ‘별로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시각을 던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올 장마, 대기 내부 불안정성이 직접 원인

악셀 티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장 연구진은 슈퍼컴퓨터 알레프와 기상청 실측 자료를 이용해 최근 100년간의 한반도 장마 패턴의 원인을 분석했다. 알레프는 IBS가 기후 물리 연구를 위해 지난해 도입한 연산속도 1.43페타플롭스(PF·1PF는 1초에 1000조 번 연산)의 슈퍼컴퓨터다. 데스크톱 컴퓨터 약 1560대와 동일한 성능이다. 티머만 단장은 e메일 인터뷰에서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긴 장마의 원인을 기후변화와 북극 온난화에 돌리고 있지만 장기적 추세(기후변화)와 단일 사건(장마)의 통계적 상관성을 찾기는 불가능하다”며 “올해 한반도 강수량 변화의 원인을 찾은 결과 한반도 상공 대기의 불안정성이 원인임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대기 불안정성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이 지역이 매년 상황에 따라 겪는 변동의 일종으로 이에 따른 강수량 변화가 기후변화 등 다른 요인에 의한 강수량 변동보다 몇 배 이상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먼저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장마에 장기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 가지 요인을 지목했다. 이상기후 현상의 원인으로 흔히 지목되는 기후변화 외에 대기 내부 불안정성에 따른 자연 강수 변동과 인간이 배출한 대기오염물질인 에어로졸 등이다. 이 가운데 대기 내부 불안정성은 기류와 수증기 공급을 변화시켜 강수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는 대기 온도를 높여 수증기량을 늘리거나 지표와 해수의 온도를 높이고 한반도의 여름 대기 순환을 변화시켜 강수량을 늘린다. 에어로졸은 복합적인 작용을 하지만, 대체로 햇빛을 막아 아래쪽 대기를 서늘하게 만들고 위로 솟는 대기 흐름을 막아 강수량을 줄인다.

○한반도 강수량 기후변화 영향 관련성 없어

연구팀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이들 세 요인이 100년간 장마를 포함해 한반도 강수 변화에 미친 영향을 측정했다. 그 결과 기후변화와 에어로졸은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서로 상쇄 효과를 내 한반도 강수 변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매년 겪는 대기 내부 불안정성은 장마와 강수 변화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올해 장마도 북서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하면서 평소보다 많은 수증기가 유입됐는데 시베리아 동쪽에 고기압이 발달하면서 건조한 북동풍이 불어 한반도 상공에 수증기가 갇히면서 지속적으로 비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여기에 대기 높은 곳에 평소보다 강한 서풍(제트류)이 불면서 7월 상공에 기압골이 발달하고 소규모 저기압 요란(폭풍)이 많이 발생하면서 강력한 호우가 발생했다”고 했다.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강수량 변화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48년간의 강수량 관측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연구팀이 1973∼2020년의 평균 강수량 변화 패턴을 분석한 결과 여름 평균 강수량과 일 최대 또는 시간 최대 강수량 등 주요 측정값에서 장기적인 변화 추세가 나타나지 않고 해마다 불규칙했다. 연구팀은 강수량이 기후변화나 해수면 온도 변동보다 대기 내부의 불규칙하고 자연적인 운동에 더 크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시베리아를 강타한 이상 고온 현상(열파)과 북극권의 온난화도 장마와는 연관성이 없었다. 북극은 2012년과 2015년, 2019년에도 이상고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땐 한반도에 오히려 평균보다 적은 비가 내렸다. 북극 기온은 온도가 꾸준히 오르고 있고 1980년대 이후 2도 이상 집중적으로 올랐지만, 한반도에서는 1973년 이후 장마 강수량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의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지난 48년간의 여름철 북극 평균 기온과 한반도 강수량 데이터 사이에 상관성이 없다”며 “향후 규모를 동아시아 전반으로 확대해 장기간의 강수량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후변화 장기화 땐 영향

연구진은 그렇다고 기후변화의 영향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밝혔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지표면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가면 한국의 6∼8월 평균 강수량은 2∼4%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만 단장은 “앞으로 80년간 온실가스 증가가 가져오는 강수량 증가가 에어로졸에 의한 상쇄를 크게 넘어설 것”이라며 “이대로 기온이 3∼5도 오를 경우 2100년에는 한반도의 여름 강수량이 산업시대 이전 대비 최대 15% 이상 증가하는 등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기자 ashilla@donga.com
#장마#기후변화#영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