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 이용해 암세포만 골라 제거… 진화하는 ‘면역항암 치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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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차의과대 등 국내 연구팀… 암세포 사멸 유도 새 항암제 개발
비정상 혈관 제거해 종양 성장 억제… 난치성 암환자 치료제 개발 희소식

김유천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왼쪽)와 이대용 연구원은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항암제를 개발했다. KAIST 제공
김유천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왼쪽)와 이대용 연구원은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항암제를 개발했다. KAIST 제공
면역세포를 이용해 암세포만 골라 제거하는 ‘면역항암’ 치료가 진화하고 있다. 숨바꼭질하는 암세포를 정확히 찾을 수 있도록 암세포의 ‘변장’ 능력을 없애기도 하고, 반대로 암세포만이 남기는 희미한 발자국을 탐지하기도 한다. 암세포가 스스로 죽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최근 나왔다.

어빙 바이스먼 미국 스탠퍼드대 발달생물학과 교수팀은 암 세포 표면에서 ‘날 잡지 마’라는 일종의 면역세포 회피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을 발견해 ‘네이처’ 7월 31일자에 발표했다.

우리 몸에서 자라는 암세포는 ‘경찰’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가 천적이다. 이 때문에 암세포는 면역세포를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스스로 체득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변장 전략이다. 면역세포가 다가와도 체포할 대상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기술이다.

바이스먼 교수팀은 암세포 표면에서 면역세포에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을 찾았다. 기존에도 PD-L1, CD47이라는 이름이 붙은 단백질이 일종의 안테나처럼 나 있어 ‘나를 잡지 마’라는 신호를 낸다. 하지만 소수의 단백질만으로는 신호가 약해 암세포가 효과적으로 면역세포를 피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때문에 추가 단백질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성장할 때 가장 많이 분비되는 단백질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일반 세포나 그 주변 조직 세포와 비교할 때 CD24라는 단백질이 암세포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분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CD24도 면역세포 회피 신호를 보내는 여러 단백질 가운데 하나로 판단된다”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실제로 인간의 암세포를 주입한 쥐에서 CD24 신호를 막은 결과 면역세포가 암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바이스먼 교수는 “앞으로는 면역세포를 회피하는 신호를 막는 게 항암치료법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세포를 잡는 면역세포. 면역항암제는 이 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인식해 공격하도록 돕는 신개념 항암제다. 주로 암세포의 회피 능력을 제어한다. 미국국립보건원 제공
암세포를 잡는 면역세포. 면역항암제는 이 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인식해 공격하도록 돕는 신개념 항암제다. 주로 암세포의 회피 능력을 제어한다. 미국국립보건원 제공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암세포가 남긴 ‘발자국’을 찾는 것이다. 암세포가 남기는 DNA 조각이 대표적인 발자국이다. 체내 단백질 중 하나인 ‘스팅’은 암세포에서 나온 DNA 조각을 탐지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이 있다. 경찰(면역세포)을 돕는 사설탐정 같은 역할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스팅의 기능을 좀 더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보다 효율적으로 찾아 공격하는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김찬, 전홍재 차의과대 종양내과 교수팀은 스팅 단백질에 추가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 밝혔다. 암세포에는 면역세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변 길목(혈관)을 변형시켜 차단하는 능력이 있다. 변형된 혈관은 암세포가 영양분이나 산소를 얻는 데에도 활용된다. 김 교수팀의 연구 결과 스팅은 이런 암세포의 작전을 방해해 암세포 주변의 비정상적인 혈관을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333명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암 혈관에서 스팅을 활성화시킨 후 조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암 내부의 비정상적인 암 혈관만 제거돼 종양의 성장과 전이가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몸속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을 치료하는 면역항암제는 70%의 환자에서 내성을 갖는다”며 “그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가 비정상적인 혈관이 면역세포가 침투하는 것을 막는 것인데 스팅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암 혈관 내 스팅 단백질이 많을수록 치료 효과가 더 좋다”며 “난치성 암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클리니컬 인베스티게이션’ 7월 25일자에 발표됐다.

김유천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와 윤채옥 한양대 생명공학과 교수팀은 아예 암세포가 스스로 죽도록 유도하는 항암제를 개발했다. 무기는 세포 내 물에 녹아 있는 ‘이온’이다. 세포 내에는 칼륨, 포타슘, 마그네슘, 인산염, 황산염, 중탄산염과 같은 이온이 들어 있다. 이들은 세포의 성장, 분열, 대사 작용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농도가 크게 달라지면 세포가 생존하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되기에, 세포는 늘 체내 이온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김 교수팀은 세포 내의 칼륨 이온을 밖으로 방출시키고 칼슘 이온은 세포 내로 유입시키는 항암제를 개발했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세포 내의 전반적인 이온 항상성을 교란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사이언스’ 5월 24일 온라인판으로 발표됐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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