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빅엿” “팔푼이” 올린 순간 확 퍼져… 슬쩍 지우곤 나몰라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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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291명 ‘썼다 지운 트윗’ 2134건 분석

동아일보 취재팀은 네덜란드의 비영리재단 ‘오픈스테이트’와 7월 공동 개설한 폴리트웁스 한국판 사이트에 모인 트윗을 분석했다. 트위터를 사용하는 19대 국회의원 282명과 광역자치단체장 10명, 안철수 후보 등 291명이 7월 21일부터 9일까지 썼다 지운 트윗은 2134개. 단순 오탈자를 수정하기 위해 지운 트윗이 많았지만 논란을 일으킬 만한 내용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논란이 우려되는 트윗을 쓴 정치인들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별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빅엿” “팔푼이” 대선후보 비방형

대선을 앞두고 상대 후보를 비방한 글은 4건이다.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달 29일 “KBS가 박근혜 후보에게 빅엿(크게 엿 먹인다는 뜻의 비속어) 헌납!”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한 이용자가 ‘박 후보가 팝콘 아르바이트를 체험한 날 KBS에서 팝콘에 쓰인 버터향의 유해성에 대해 방송한다’라며 올린 트윗을 리트윗(RT)하며 한마디 덧붙인 것.

서기호 의원이 판사 재직 당시 남겼던 ‘가카 빅엿’ 트윗은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최 의원의 ‘빅엿’ 때는 잠잠했다. 해당 트윗을 8분 만에 지웠기 때문이다. 원문 작성자가 지운 트윗은 그것을 본 팔로어가 리트윗하지 않으면 모든 팔로어의 타임라인에서도 지워져 더는 볼 수 없게 된다. 대선후보를 비방한 글이 최 의원의 팔로어 6400여 명에게 전달됐는데도 ‘없던 일’이 돼 버린 것.

최 의원 비서관은 기자와 통화에서 “‘빅엿’은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를 통해 대중화된 용어라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안철수 후보의 ‘룸살롱 공방’이 한창 번졌던 8월 안 후보를 ‘팔푼이’라고 지칭했다. 하 의원 보좌관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팔푼이 같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대선후보 3인 가운데 오탈자가 아닌, 다른 이유로 트윗을 지운 이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였다. 문 후보는 이달 2일 “박근혜 씨가 해명할 일 하나 늘었군요. 군사평론가 김종대는 ‘NLL이 논란이 되도록 방치한 주범은 1977년에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서북해역을 영해에서 빼 버린 박정희’라고 주장했군요. 당시 퍼스트레이디 대행이 박 씨였죠”라는 글을 리트윗했다가 하루 만에 지웠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실무자가 문 후보의 허락을 받지 않고 리트윗한 글이라 내용 진위와 관계없이 지웠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대선을 앞둬 여론이 민감한 시기에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올리고도 유권자에게는 아무 해명을 하지 않았다.

○ 유언비어부터 막말까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고 바로잡지 않은 경우는 6건이다. 민주당 이목희 의원은 북한강과 낙동강 유역에 녹조가 생겨 시민들의 불안이 컸던 8월 5일 “수돗물에서 녹조침전물이 나온다. 인체에 독성으로 작용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라는 한 이용자의 트윗을 리트윗했다. 사실무근으로 밝혀지자 8일 만에 지웠지만 팔로어 1300여 명에게 퍼진 뒤였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1년 전의 인터넷 기사를 최근 것으로 착각해 여당을 공격했다가 황급히 글을 내렸다. 지난달 8일 “이상득 전 의원의 친인척이 정부 투자금을 빼돌렸다는 얘기가 돌지만 검찰은 대선이 지난 뒤인 내년 2월에나 조사한다.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면 조사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쓴 이용자의 트윗과 기사 링크를 리트윗한 것. 하지만 이 기사는 2011년 12월 23일 것이었다.

여야 의원들은 8월 초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박근혜 그년’ 트윗을 놓고 막말하지 말라고 공방을 펴면서도 막말을 쏟아냈다.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은 이종걸 의원을 비판하며 “이 자를 어찌해야 할까요?”라고 올렸다가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로 고쳤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튀고 싶은데 튈 방법이 이런 것밖에 없을까요? 안쓰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임모(임수경) 의원의 경우처럼 말입니다”라고 올렸다가 1시간 뒤 지웠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이종걸 의원을 공격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그년’의 홍위병”이라고 지칭하며 “노 전 대통령에게 ‘개×놈’, ‘불×값도 못하는 놈’ 등 발언했을 땐 사과도 하지 않았다”라고 비난했다. 그러곤 하루 뒤 지웠다.

○ 모른 척 대신 솔직한 정정 필요

정치학자와 언론학자들은 정치인의 막말 뒤에는 억지로 이슈를 만들어 존재감을 알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파급력을 이용해 표심을 자극하려고만 하니 정제된 발언과 의견이 주목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잘못된 정보를 신속하게 지운 것은 바람직하지만 적절한 정정과 해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괴담을 퍼뜨렸다면 추후 당국의 해명 자료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권상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여론을 주도하는 공인이라면 자신의 던진 말이 잘못됐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 분명하게 바로잡아야 하며 트위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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