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드림팀]<3>서울성모병원 위암센터 치료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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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위암세포, 배에 구멍뚫어 콕 집어내

서울성모병원 위암센터 치료팀이 한자리에 모여 위암 환자의 진단 기록과 영상 자료를 살펴본 뒤 최적의 치료 방식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성모병원 위암센터 치료팀이 한자리에 모여 위암 환자의 진단 기록과 영상 자료를 살펴본 뒤 최적의 치료 방식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였던 강모 씨(78)는 지난해 1월 서울시내 한 병원에서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는 위와 식도의 경계 부위까지 퍼져 있었다. 가족은 “개복 수술은 물론 가슴을 절개하는 개흉 수술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안전한 수술을 위해 서울성모병원으로 달려갔다.

이 병원 위암센터 치료팀은 “지병이 있는 강 씨가 개흉 수술을 받으면 합병증이 발생할 우려가 매우 크다”며 다른 치료 방식을 찾기로 했다. 위장관외과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전문의 18명으로 구성된 치료팀은 복강경 검사에 들어갔다. 위 속의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번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치료팀은 30분간 토의 끝에 해법을 내놓았다. 우선 항암치료를 통해 식도 부위의 암 크기를 줄인 뒤 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면 개흉 수술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치료팀의 판단이었다.

석 달간의 항암치료로 식도 부분의 암 덩어리가 줄어들자 강 씨는 위절제술을 받았다. 4시간 동안 위를 모두 잘라내고 십이지장과 식도를 다시 이어 붙이는 수술이었다. 최근 강 씨는 아무런 합병증 없이 건강을 회복했다.

치료팀을 이끌고 있는 위장관외과 박조현 교수는 “정확한 진단과 최적의 치료법만이 생존율을 높인다”고 말했다.

○ 숨은 암세포도 잡아내는 노하우


지난해 3월 한모 씨(34·여)는 속쓰림 때문에 새벽잠을 설쳤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던 한 씨는 입덧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병원에서도 ‘단순 소화불량’이라는 진단이 나와 2주일간 소화제를 먹었다. 하지만 새벽 속쓰림은 멈추지 않았다. 더 큰 병원을 찾아가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위벽에서는 궤양도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성모병원 위암센터 치료팀은 한 씨의 위에서 암세포를 찾아냈다. 암세포는 위 점막 아래층에 숨어 있었다. 이 암세포들은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도 보이지 않았지만 치료팀은 복강경으로 암세포가 잠복한 곳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배에 3, 4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고 내시경을 집어넣어 암세포를 추적해낸 것.

치료팀은 올해 5월 복강경 검사로 위암 재발 여부를 진단하는 방법을 미국 복강경학회지에 발표했다. 위암이 재발할 경우에는 얼마나 빨리 암세포를 찾아내느냐에 따라 생존율이 크게 달라진다. 2008년 치료팀이 조사한 결과 위암 재발환자 347명 중 15명만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재발 환자 중 95%는 너무 늦게 암세포를 발견해 평균 생존 기간이 9개월을 넘지 못했다.

MRI나 CT로 찾지 못하는 암세포는 장기를 덮고 있는 복막에 뿌리를 내리거나 림프샘에 전이될 확률이 높다. 로봇 수술 전문가인 송교영 교수는 “위암세포를 추적하는 노하우만 있으면 미세한 복막 전이는 복강경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미국 의료진도 놀라게 만든 생존율

위암 수술은 위를 잘라낼 뿐만 아니라 명치끝에서 배꼽에 이르는 부위에 있는 모든 장기를 건들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폐렴이나 출혈과 같은 합병증의 위험이 크다.

치료팀은 수술에 들어가기 전 합병증을 막기 위한 회의를 열고 최적의 수술 방식을 택한다.

지난해 5월 위암 판정을 받은 김모 씨(45)는 간경화 증세를 보였다. 간경화 환자는 지혈 능력이 떨어져 수술 후 출혈이 심하고 마취약과 항생제 사용으로 간 기능이 급속히 떨어진다.

치료팀은 정확하고 빠른 수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수술을 진두지휘한 박 교수는 “수술 전 간 기능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수술 단계마다 특별한 지혈 요법을 쓰면서도 수술 시간을 원래 계획했던 5시간에서 4시간으로 앞당겼다”고 말했다. 김 씨는 수술 후 간 수치가 약간 올라갔을 뿐 큰 합병증 없이 회복했다.

치료팀의 빠른 손놀림과 완치율은 세계 병원도 인정하고 있다. 치료팀은 지난해 미국의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MSKCC)와 공동연구에서 한국과 미국의 위암 환자 생존율을 비교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위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비교 대상이었다. 그 결과 치료팀으로부터 수술을 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1%로 미국 의료진 58%보다 높았다. 수술 후 합병증 발생 비율도 한국 23% 대 미국 33%로 치료팀이 우수했다. MSKCC 의사들은 “놀랍다. 믿기 힘들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박 교수는 “림프샘 절제술의 차이가 생존율을 좌우했다”고 설명한다. 위 주변을 둘러싼 림프샘은 암세포가 전이되기 쉬운 부위. 수술에 들어갈 때 이런 림프샘을 어느 정도 없앨 것인가는 전문의 사이에서 많은 논란거리였다. 치료팀은 위암이 발생한 위벽 주위뿐만 아니라 간동맥 비장동맥 주위의 림프샘을 없애는 광범위 림프샘 절제술을 도입했고 MSKCC는 합병증을 우려해 위벽 주위에 있는 림프샘만을 없애는 수술 방식을 택했다.

○ 대학 시절 그룹사운드의 힘

치료팀은 어려운 고비마다 ‘팀원 간 조화’를 강조한다. 치료팀 구성원 중엔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전문의들이 눈에 띈다. 종양내과 전문의 홍영선 교수와 박 교수는 중앙고 선후배 사이다. 이들과 영상의학과 변재영 교수는 가톨릭대 의대를 다닐 때 그룹사운드 ‘메딕스(Medics)’를 만들었다. 홍 교수는 드럼, 변 교수는 퍼스트기타를 맡았고 박 교수는 싱어로 활약했다. 이들은 요즘도 대학 축제 때 학생들로부터 공연 제의를 받는다.

홍 교수는 “진료 과목 간 경계가 분명치 않은 분야에서 팀워크가 빛을 낸다”며 “첨단 진단 방법이나 수술 방식이 나올 때마다 팀에서 지식을 공유하고 환자에게 최신의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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