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투표 “부담 크지만… ‘탈락자 투표’ 가장 합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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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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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등 한 명만 선택하는 방식>


“탈락자는 ○○○!”

대중음악의 지축을 흔들고 있는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나가수)가 연일 화제다. 매번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인터넷 사이트 등에는 ‘어떻게 투표를 했기에, 저 가수가 꼴찌야’라는 댓글이 붙는다. 일부에서는 경연 결과를 놓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나가수는 각종 논란과 찬사 속에 진행되고 있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투표 방식은 수학적으로 보면 여러 가지 허점이 있다.

○ 1위에게 투표해서는 7위 결정 못해

나가수는 아이돌 위주로 흘러가던 대중음악에 경종을 울렸다. 노래가 주는 감동이란 이런 것이며, 그 감동을 전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수라는 새로운 정의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탈락자로 의외의 인물이 선정되자 논란이 시작됐다.

수학의 눈으로 볼 때 논란의 원인은 투표 방식에 있다. 탈락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1위에게 투표하게 한 것이 문제였다. 나가수는 청중평가단 500명에게 가장 감동을 준 가수 1명을 고르게 하고 표를 가장 적게 얻은 가수가 탈락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나가수는 ‘다수결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다수결의 함정은 1위만을 뽑는 방식에서 2위가 탈락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만약 1위를 차지한 윤도현에게 표를 준 사람이 김건모를 2위라고 생각하더라도 표를 가장 적게 받으면 7위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탈락자(7위)를 선정하려면 제일 못 부른 가수에게 투표하는 편이 낫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방식은 가수, 청중, 제작진 모두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제작진은 지난달부터 감동을 준 가수 3명에게 표를 주는 ‘1인 3투표제’를 채택했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자가 좋아하는 모든 후보에게 문자투표를 하는 방식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같은 ‘찬성투표제’는 미국 학술계에서 회장을 뽑을 때 종종 쓰인다.

나가수에서는 금지됐지만 만약 가수 1명에게 3표를 모두 몰아주는 게 허용되면 ‘누적투표제’가 된다. 누적투표제는 주주총회 등에서 갖고 있는 투표권만큼 마음껏 투표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는 모든 청중평가단이 1위에게 3표를 몰아주면 기존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단점이 있다.

○ 순서 특혜 논란, 실시간 순위로 해결 가능

나가수에서는 ‘경연 순서 특혜 논란’도 있다. 최근 나가수 방영분에는 새로운 가수에게 경연의 6, 7번째 순서를 우선 배정하며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먼저 무대에 오른 가수는 뒤에 등장하는 가수의 경연에 묻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다.

수학 원리를 도입하면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프랑스 수학자인 장샤를 드 보르다가 1770년 개발한 ‘보르다 투표제’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보르다 투표제는 모든 후보에게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이는 이미 나가수에서 가수들의 매니저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매니저들은 경연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가수의 이름판을 순위대로 나열한다. 막 경연을 마친 가수가 누구보다는 좋았고, 누구보다는 못했다는 것만 따진다. 이 방식을 활용하면 경연 순서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청중평가단도 같은 방식으로 공연이 끝날 때마다 실시간으로 순위를 매긴 뒤 1∼7위에게 차등으로 점수를 줘 합산하면 보르다 투표제가 가능하다. 이는 심사위원단이 가수나 피겨스케이팅 선수 각각에게 평가점수를 매기는 ‘점수투표제’와는 다르다.

문제는 탈락자 못지않게 1위도 주목받는 상황에선 의외의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평가단이 1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2위가 될 듯한 가수에게 7위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티팬’이 많은 가수라면 경연과 상관없이 최하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완벽한 투표 방식이란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은 존재할 수 없다’는 ‘불가능의 정리’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197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건이 많아질수록 조건끼리 모순되기 때문에 모든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정리다. 불가능의 정리에 도전하는 것은 나가수를 비롯한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의 숙제인 셈이다.

이 기사는 수학동아 6월호에 실린 경기 고양 호곡중 배수경 수학교사, 경기 안양 부흥고 오혜정 수학교사, 경기 안양 신성고 윤장로 수학교사의 원고를 참고해 작성됐습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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