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바이러스의 습격]<下>유익한 바이러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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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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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바이러스가 ‘암세포 킬러’

90∼1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아데노바이러스. 최근에는 이 바이러스를 이용해 조류인플루엔자를 퇴치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 미국 위스콘신대
90∼1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아데노바이러스. 최근에는 이 바이러스를 이용해 조류인플루엔자를 퇴치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 미국 위스콘신대
바이러스는 라틴어로 ‘독(毒)’이라는 뜻이다. 매년 세계 곳곳에서 창궐해 사람과 가축의 생명을 앗아가는 탓에 이름에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도 잘만 쓰면 독이 아니라 ‘약(藥)’이 될 수 있다.

김연수 인제대 식의약생명공학과 교수(인당분자생물학연구소장)는 쥐와 원숭이에서 백혈병을 일으키는 두 종의 레트로바이러스를 결합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이 바이러스는 암세포만 감염시킨다. 암세포를 죽이는 DNA를 바이러스 안에 넣으면 효과적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바이러스는 DNA 같은 유전물질을 몸 안에 넣어 병을 고치는 ‘유전자 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뇌암, 폐암, 대장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달 시작한 안전성 평가가 끝나면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성백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와 포스텍 전북대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진은 결막염을 일으키는 아데노바이러스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는 연구를 하고 있다. AI 바이러스는 헤마글루티닌(H)과 뉴라미니다아제(N) 등 두 개의 항원을 갖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헤마글루티닌을 이용해 숙주세포에 침입한다.

연구진은 헤마글루티닌을 만드는 유전자를 아데노바이러스에 넣은 다음 쥐에게 주입하면 헤마글루티닌의 작용을 막는 항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항체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침입할 때 헤마글루티닌의 기능을 억제해 감염되는 것을 막는다. 그는 “바이러스로 다른 바이러스를 막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쓴 것”이라며 “바이러스를 역이용하면 이롭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2009년 12월 국제학술지 ‘바이러스학(virology)’에 실렸다. 바이러스는 세균(박테리아)에도 기생한다. 이런 바이러스를 ‘박테리오파지’라고 부른다. 박테리오파지는 바이러스가 숙주세포를 감염시키는 것처럼 세균 안에 자신의 유전자를 넣어 스스로를 복제한다. 수많은 개체로 증식한 박테리오파지는 쓸모가 없어진 세균을 죽이고 나와 다른 세균을 찾아나선다. 박테리오파지의 이런 성격은 슈퍼박테리아를 잡는 데도 쓰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슈퍼박테리아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박테리오파지를 개발하면 슈퍼박테리아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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