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작은소리에도 깜짝…연평도 주민 통해 본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극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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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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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당사자끼리만 모여있으면 스트레스 가중, 가족의 정서적 지지 어려울땐 사회가 도와야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 ‘멍하니 있다 헛웃음만 웃는다.’ ‘연기만 봐도 놀라서 운다.’ 북한의 포격 현장에 있던 인천 옹진군 연평도 주민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사고 장면이 자꾸 떠올라 잠을 못 잔다. 반대로 현실을 회피하고자 계속 잠만 자는 사람도 있다. 불안 긴장 분노 감정이 나타난다. 눈앞에 포탄이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다면 이런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다만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고 진단한다.》
큰 사고가 생긴 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증세가 심해지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이때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큰 사고가 생긴 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증세가 심해지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이때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찜질방에서 단체생활하는 건 위험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조기에 적절히 치료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이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외상 사건을 겪은 사람들 중에 10% 정도는 나중에 PTSD를 포함한 정신 장애를 일으킨다. 하지만 사고를 겪고 나면 한동안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기 어렵고 외부활동을 꺼리게 돼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다.

현재 연평도 주민들의 이주대책이 명확히 마련되지 않은 채 찜질방에 머물고 있다. 찜질방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좁은 곳에서 끼여 자고, 옷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면 급성스트레스 반응이 PTSD로 악화되기 쉽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사고 당사자가 잠을 편히 잘 수 있고 안정된 느낌을 갖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평소와 달리 찜질방에 머물게 되면 PTSD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포격을 당한 사람만 모여 있다 보면 당시 느낌이 더 생생하게 떠오르기 쉽다. 가족끼리 지내는 것이 가장 좋고 5명, 10명씩 분리해 기업연수원이나 청소년수련원에서 지내는 것이 낫다.

이홍석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정신과 교수는 “교통사고 환자가 정형외과 병동에 장기 입원을 하면 늘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곳으로 생각해 후유증이 계속 남는다”며 “이 경우 다른 병동으로 옮기기만 해도 신체·심리적 증상이 호전된다”고 말했다.

연평도 주민들은 이주대책 및 피해보상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돌아보기 힘들다. 가족이 모두 같은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감싸줄 사람도 없다.

이 교수는 “가족이 정서적인 지지를 할 수 없다면 사회가 해줘야 한다”며 “지금같이 방치하면 분노가 쌓이고 나중에 가족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가정 해체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사고 피해자들은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고 위기에서 나를 도와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신감을 갖는다. 이제 삶은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의 연속일 뿐이다.

사고 피해자들이 짜증을 심하게 내고 쉽게 화를 내는 이유는 이러한 심리에 기인한다. 사고를 경험한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 역시 사고를 회피하고 싶은 감정이 크므로 막연히 ‘좋아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지내기 쉽다. 이러면 치료시기를 놓치게 된다. 증상이 1, 2년이 지나서 나타나기도 하므로 상담치료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

○ 인지행동-약물치료 병행 효과

스트레스 반응이 없어지지 않으면 뇌 구조와 기능이 손상된다. 이때는 인지치료·약물치료를 함께 사용한다. 현재 인지행동치료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대표적인 인지행동치료는 환자가 꺼리는 공포 자극에 집중 노출시키는 치료다. 포격 당시를 떠올릴 때 공포감을 느낀다면 포격소리나 연기 같은 상황에 반복 노출시켜 둔감해지도록 한다.

인지 재구성치료도 한다. 자신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볼수록 PTSD에 취약하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은 PTSD 환자를 불안과 초조에 빠뜨린다. ‘포격이 우리 집에만 떨어진다’는 생각이 확률상 낮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도록 해 극단적인 인식을 교정한다.

약물요법으로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SRI)가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차단제(SNRI)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항우울제 계통, 전통적 약물인 삼환계 항우울제(TCA)도 사용한다.

PTSD의 궁극적 치료 목표는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음주와 흡연을 삼가고, 정기적인 운동을 한다.

정서적 안정을 얻으려면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는 것도 환자들의 정신건강 회복에 필수적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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