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텝 밟을 때마다 전기 3~5W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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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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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압력 이용 전기 얻는 ‘배터리빌딩’ 축구장-지하철역 설치땐 공짜 에너지
염분방지 콘크리트 풍력발전기 눈길, 혈류 방해하는 ‘코르셋 악영향’ 연구도

《‘첨성대 모양의 풍력발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배터리 빌딩’, ‘코르셋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 제목만 봐서는 무엇인지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연구가 과학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이들의 공통점은 새롭지만 성공 가능성은 불투명한 ‘벤처 연구’라는 것. 소위 ‘잘되면 대박, 못되면 쪽박’이라고 연구자들은 전한다.한국연구재단은 5월 ‘모험연구’ 라는 이름하에 이런 연구 50개를 선정했다. 경쟁률은 4.2 대 1로 치열했다. 모험 연구는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성실 실패’라면 최대 3년까지 연구비를 지원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진짜로 도전해 본다.》

○ 첨성대 모양의 풍력발전기

보도블록을 걸어가거나 무대에서 춤을 출 때 바닥에 압력이 전해진다. 이 압력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압전소자를 이용해 밟으면 빛이 나는 무대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사람들. 사진 제공 서스테이너블 댄스클럽
보도블록을 걸어가거나 무대에서 춤을 출 때 바닥에 압력이 전해진다. 이 압력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압전소자를 이용해 밟으면 빛이 나는 무대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사람들. 사진 제공 서스테이너블 댄스클럽
김장훈 아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첨성대 모양의 풍력발전기를 건설할 방법을 찾고 있다. 사실 꼭 첨성대 모양이 아니어도 좋다. 김 교수는 “풍력발전기의 타워(몸체) 단면이 삐죽빼죽한 별 모양이 될 수도 있다”며 “타워에 레일을 깔아 블레이드(날개)를 풍력발전기 꼭대기까지 나르는 방식이 가능한지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학자의 입장에서 현재 풍력발전기 건설 방식은 경제성이 떨어진다. 높이 100m에 이르는 풍력발전기 타워를 만들려면 두꺼운 철판 수십 장을 하나하나 용접해 붙여야 한다. 풍력발전기 꼭대기에 날개 하나 달려면 10t이 넘는 무게 때문에 대형 크레인을 쓴다.

더 큰 문제는 ‘소금 바람’이다. 김 교수는 “바다로 나갈수록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풍력발전기를 점점 해상에 설치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풍력발전기가 철판으로 만들어진 만큼 염분 섞인 바람이 불어오면 녹이 슬어 수명이 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생각해낸 재료는 경량 철근 콘크리트.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콘크리트를 한 층씩 쌓아올려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다. 그는 “타워에 작용하는 바람의 힘, 지진이 미치는 영향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수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풍력발전기 형태를 계산하고 있다”며 “어떤 모양이 나올지 스스로도 몹시 궁금하다”고 말했다.

○ 에너지를 생산하는 ‘배터리 빌딩’



전규엽 경북대 산학협력중심대학사업단 교수는 요즘 사람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다 ‘배터리 빌딩’ 때문이다. 사람이 걷거나 뛸 때 바닥으로 전달되는 운동에너지를 모아서 빌딩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로 변환시켜 무공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연구다. 전 교수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와트 클럽(Watt Club)’은 사람들이 춤을 출 때 바닥에 전달되는 운동에너지를 모아 바닥에 조명이 켜지도록 설계됐다”며 “사람들이 버리는 ‘공짜’ 에너지를 잘 모으는 일이 ‘배터리 빌딩’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원리는 간단하다. 사람이 걷거나 뛸 때 바닥에는 체중만큼 압력이 전달된다. 압전소자를 이용해 이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면 된다. 전 교수는 “한 발짝 걸을 때마다 3∼5W의 전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서 “축구장에 이런 바닥 시스템을 깔면 시간당 2.1kW의 전기에너지가 생산된다”고 말했다.

전 교수가 첫 번째 ‘배터리 빌딩’으로 점찍은 곳은 지하철역. 유동 인구가 많은 만큼 에너지를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역은 개찰구 주변에 바닥 시스템을 깔아 개찰구 작동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얻고 있다. 영국의 ‘페이브진 시스템(Pavegen Systems)’사는 런던 시내 인도에 바닥 시스템을 깔아 가로등을 밝히는 데 이용하고 있다. 전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2만8527명이 동시에 걸으면 기차를 1초 동안 움직이는 전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서 “바닥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진정한 의미의 배터리 빌딩을 만드는 일이 목표”라고 말했다.

○ 코르셋이 폐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 바람이 강한 바다 근처에 풍력발전기가 세워지고 있지만 소금기 탓에 강철 대신 다른 재료로 풍력발전기를 만들 필요성이 커졌다.
최근 바람이 강한 바다 근처에 풍력발전기가 세워지고 있지만 소금기 탓에 강철 대신 다른 재료로 풍력발전기를 만들 필요성이 커졌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여성은 수백 년간 코르셋을 입어 왔지만 코르셋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나영주 인하대 생활과학부 교수(의류디자인전공)는 인체의 곡선을 돋보이게 만드는 코르셋이 건강에는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르셋이 몸에 가하는 압력이 너무 커서 17∼18세기에 이를 착용한 여성들이 두통, 빈혈, 잦은 유산 등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의 코르셋을 복원해 폐활량, 혈류량, 에너지대사량, 피로도 등을 실제로 측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르셋 복원은 같은 학부 김양희 박사가 맡는다. 김 박사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옥양목류 사이에 뻣뻣하고 질긴 고래수염을 촘촘히 넣어 바느질할 계획”이라면서 “코르셋 하나에 고래수염만 수 m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코르셋 연구는 현대 의상에 적용된다. 나 교수는 “20대 여성 4명에게 최근 유행하는 스키니진을 입혀 하체에 미치는 압력을 측정한 결과 엉덩이와 무릎에서 허용치 한계에 가까운 값이 나왔다”면서 “17세기형 스키니진인 코르셋도 수백 년 전 여성의 신체에 비슷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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