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변이 차단 폐암 표적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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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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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주 교수 ‘크리조티닙’ 임상시험
환자 70%서 폐암 종양 크기 작아져

앞으로 환자는 의사에게 “제가 폐암에 걸렸나요”라고 물어보는 대신 “저는 어느 유전자가 문제인 폐암에 걸렸나요”라고 물어봐야 할지 모른다. 또 흡연자 폐암 환자와 비흡연자 폐암 환자의 치료법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시카고에서 8일까지 열리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 학술대회에서 방영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발표할 폐암표적치료제 ‘크리조티닙’의 임상시험 결과는 유전자 변이로 인한 폐암 치료에 획기적 전기를 가져올 것으로 평가된다.

방 교수가 2008년부터 한국 미국 호주에서 모집한 말기폐암 환자 82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한 결과 폐암 종양 크기가 작아진 환자가 70%에 달했다. 특히 비흡연자의 폐암 치료에 중요한 단서를 줄 것으로 보인다. 82명 중 평생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 75%가 넘었기 때문.

방 교수가 임상시험한 폐암은 ALK, EML4라는 두 가지 유전자의 변이로 인한 폐암. 폐 안에서 이 두 가지 유전자가 염색체 전위(위치를 바꿈)를 통해서 달라붙으면 융합단백질이 생긴다. 이 융합단백질 때문에 세포가 이상 증식하면서 폐암으로 발전한다.

방 교수의 임상시험은 EML4-ALK 유전자 변이에 ‘크리조티닙’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크리조티닙은 융합단백질이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스위치를 끄는 역할을 한다. EML4-ALK 유전자 변이로 인한 폐암은 전체 폐암 환자의 5%로 추정된다. 많지는 않지만 ASCO에서 이번 발표를 주목하는 이유는 ‘폐암 맞춤형 치료 시대’를 가시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폐암 치료는 하나의 열쇠로 모양이 다른 여러 개의 자물쇠를 열려고 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만큼 약의 효과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폐암은 약물치료가 잘 듣지 않고 전이가 빨라 환자가 6개월 안에 대부분 사망했다. 크리조티닙의 효과가 확인되면 앞으로는 폐암을 일으키는 유전자에 맞는 치료제 개발이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맞춤형 치료제는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항암제는 암세포를 제거하면서 정상세포에도 악영향을 끼쳐 탈모, 백혈구 수 감소, 불임 등을 유발했다. 만약 EML4-ALK 유전자 변이로 인한 폐암이라면 변이 스위치만 끄면 되기 때문에 약이 독할 필요가 없다. 이상윤 한국화이자 이사는 “이번 크리조티닙 임상시험은 유전자 변이에 맞는 폐암 치료제를 찾아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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