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온 가속기로 ‘갓난아기 우주’ 재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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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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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과학자 포함 국제연구진 ‘반입자 원자핵’ 발견

《우주의 시작인 빅뱅 이후 수백만분의 1초 만에 태어난 갓난아기 우주를 한국 과학자들이 포함된 대형 국제 연구팀이 찾아냈다. 유인권 이창환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가 포함된 국제 연구 그룹 ‘스타(STAR)’는 4일 “반입자만으로 이뤄진 원자핵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물질 상태와 초기 우주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5일자에 발표됐다. 스타 프로젝트는 미국 브룩헤이번연구소 중이온 가속기(RHIC)의 대형 검출기를 이용한 실험 프로젝트로 주로 무거운 입자의 성질을 연구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12개국 54개 연구기관에서 500여 명의 과학자가 참가하고 있다.》
금 원자핵 충돌시키자 미니빅뱅 상태서 발생
초기우주입자 추정… 물질탄생 비밀 벗길 단서

한국 과학자가 포함된 국제 연구진이 ‘빅뱅’을 작은 규모로 재현한 ‘미니빅뱅’에 성공했다. 미니빅뱅은 초기 우주를 낳았다. 사진 제공 NASA
한국 과학자가 포함된 국제 연구진이 ‘빅뱅’을 작은 규모로 재현한 ‘미니빅뱅’에 성공했다. 미니빅뱅은 초기 우주를 낳았다. 사진 제공 NASA
두 개의 원자핵이 충돌하는 모습의 상상도. 빛의 속도로 가속기 안을 달리던 원자핵(중이온)이 충돌하면 우주가 태어났을 때를 닮은 미니빅뱅이 일어난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스타(STAR) 검출기로 찾아낸 새로운 입자들의 궤적이다. 사진 제공 부산대
두 개의 원자핵이 충돌하는 모습의 상상도. 빛의 속도로 가속기 안을 달리던 원자핵(중이온)이 충돌하면 우주가 태어났을 때를 닮은 미니빅뱅이 일어난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스타(STAR) 검출기로 찾아낸 새로운 입자들의 궤적이다. 사진 제공 부산대
○ 금 원자핵 빛의 속도로 충돌시켜

중이온 가속기는 무거운 금속 원자를 충돌시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관찰한다. 정부가 1월 세종시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도 중이온 가속기 설치 계획이 들어 있다. 스타 연구진은 이번 가속기 실험에서 두 개의 금 원자핵을 빛과 같은 속도로 충돌시켰다. 금 원자핵 하나는 무려 1000억 eV(전자볼트)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두 개의 금 원자핵이 충돌하자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 수조 도의 상상도 못할 고열이 발생하면서 원자핵이 모두 녹아 거대한 에너지로 바뀌어 버렸다. 우주가 태어나기 직전의 거대 에너지 상태 즉 ‘빅뱅이 일어나기 직전’의 축소판이 된 것이다.

이 에너지는 가속기 안에서 ‘미니 빅뱅’을 일으키며 우주가 처음 태어날 때 만들어졌던 작은 입자, 즉 쿼크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 반입자로 불리는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초입자(반람다입자)가 한데 뭉쳐 이번에 발견된 ‘반원자핵(반초삼중수소핵)’을 만들었다. 반입자는 다른 성질은 모두 같은데 전기적 성질만 다른 입자로 양성자가 플러스(+) 전하를 띠는 데 비해 반양성자는 무게, 모양은 모두 같고 마이너스(―) 전하를 띠는 것만 다르다.

유 교수는 “세 개의 반입자가 뭉쳐 만들어진 반원자핵이 발견된 것은 세계 최초”라며 “카드 게임에 빗대면 확률적으로 희귀한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뜬 셈”이라고 말했다. 반원자핵은 수천억분의 1초 만에 붕괴하며 사라졌지만 자신의 흔적을 검출기 안에 남겼다. 유 교수는 “이 현상은 2007년에 처음 발견됐으며 2008년 하반기부터 분석이 시작돼 이번에 논문으로 나왔다”며 “당시 연구원들 모두 ‘어떻게 이런 게 나올 수 있나’ 하고 신기해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와 이 교수, 최경언 씨(박사과정)는 스타 연구그룹 안에서 중이온 충돌 실험 검출기 개발과 데이터 분석에 참여했다.

○ 끈적거리는 액체 같은 초기 우주

가속기 안에서 순간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진 이 입자가 왜 중요한 걸까. 빅뱅 이후 태어난 우주의 첫 모습을 밝히고 물질의 신비도 벗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빅뱅 이후 만들어진 첫 물질 중 하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셈”이라며 “우주의 진화와 물질의 탄생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한때 빅뱅 이후 첫 우주는 기체에 가까운 플라스마 상태여서 초기에 만들어진 입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 교수는 “요즘에는 첫 우주가 매우 끈적끈적한 액체와 비슷한 상태였을 거라고 많이 생각한다”며 “이번 연구는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초기 우주에서는 수많은 입자들이 강하게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얽혀 존재한다. 이 중에는 마치 패거리처럼 떼를 지어 다니는 반입자들도 생겨났다. 이들이 뭉치는 바람에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초입자’가 결합한 ‘반원자핵’이 태어났고 이번에 가속기 안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우주 초기에는 기묘한 형태의 원자들이 많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며 “이번 발견은 그들을 관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초기 우주에서 반입자가 많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예측도 뒷받침한다. 과학자들은 빅뱅 이후 입자와 반입자가 같은 양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대칭 깨짐’이라는 현상 때문에 입자가 더 많이 살아남았고 결국 지금의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대칭 깨짐 현상이 없었다면 모든 입자와 반입자가 충돌해 사라지면서 현재의 우주도 없었을 것이다.

유 교수는 “만일 반입자가 더 많이 살아남아 지금의 우주를 만들었다면 비유적으로 표현해서 원자핵은 마이너스 전하, 전자는 플러스 전하를 띠게 됐을 것”이라며 “우리 우주와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우주에서는 반입자로 만들어진 우주도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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