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 떼어내자 할머니 뺨엔 눈물이…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세브란스, 첫 존엄사 조치…스스로 호흡해 생명 유지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공호흡기를 뗀 직후였다.

23일 오전 10시 22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5층 내과병동 1인실 21.4m²(6.5평) 남짓한 공간. 이곳에서 대법원의 연명치료 중단 판결에 따라 김옥경 할머니(77)를 상대로 국내 첫 ‘존엄사 조치’가 시행됐다.

이에 앞서 김 할머니는 오전 8시 50분 세브란스병원 본관 9층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낼 15층 1508호(1인실)로 옮겨졌다. 주치의인 박무석 교수 등 의료진 4명과 아들, 딸, 사위 등 가족 11명, 가족 측 변호사, 김 할머니가 다니던 교회 목사, 존엄사 허용 1심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김천수 부장판사가 지켜봤다.

김 할머니의 발이 조금 움직였다. 그러자 딸이 어머니의 발을 주물렀다. 딸들이 얼굴을 비비며 “엄마,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요. 하늘에 가서 아버지도 만나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임종예배가 시작됐다. 예배 말미에 가족은 ‘어머니 마음’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딸들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때 받을 충격을 우려해 병실 문을 나서야 했다. 이어 박 교수가 “호흡기를 떼어 내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김 할머니의 입과 코에 연결된 호흡기와 호스를 떼어낸 후 기계 전원을 껐다. 가족의 오열이 터져 나왔다.

호흡기 제거로 존엄사 조치는 끝이 났다. 김 할머니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지 1년 4개월 만이고 지난해 11월 28일 1심 법원이 국내 처음으로 가족의 연명치료 중단 요청을 받아들인 지 7개월여 만이다.

호흡기를 뗀 후에도 김 할머니는 눈을 뜬 상태였다. 입술을 움찔거렸으며 얕지만 자발(自發)호흡도 했다. 호흡기가 제거되고 16분이 흘렀을 때였다.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누워 있던 김 할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김 할머니가 처음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켜보던 사람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안타까웠다. 간호사는 “중환자실에 있을 때도 눈물을 가끔씩 흘렸는데 왜 흘렸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의 팔과 발을 주무르면서 귀에 대고 “얼굴 다 상했다, 엄마 힘들지”라고 말했다.

병원측 “호흡기 뗐지만 영양공급은 계속”

이때까지만 해도 병원 측은 김 할머니의 호흡이 최대 3시간 정도면 멈출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의 모습은 오히려 평온해보였다. 점점 죽어가는 모습과는 달리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채 입을 움찔움찔하면서 마지막 생명의 줄을 놓지 않고 있었다.

환자의 오른쪽 모니터는 분당 95 정도의 심박수(정상 60∼100회), 92% 정도의 산소포화도를 가리켰다. 산소포화도는 95% 이상이 정상이지만 92% 정도의 산소포화도는 약간 부족해 보인다. 그 부족한 산소포화도를 할머니는 스스로 심박수를 높여 보완하고 있었다. 호흡수는 20회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상인과 같은 호흡수이다.

오후 2시부터 병원 측은 튜브를 통해 유동식을 공급했다. 900mL 정도. 박 교수는 “대법원에서는 호흡기만 떼라고 했기 때문에 현재 환자에게 필요한 수액과 영양 공급 등은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7시 반, 9시 반 회진 때도 비슷한 상황을 유지했다. 9시 35분쯤 눈에 붕대를 대주자 잠에 빠졌고, 코도 조금 골았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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