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보험을 눌러쓰다

  • 입력 2007년 6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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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다. 질병이나 사고에 대비해 사람들은 미리 보험을 들어 둔다. 과학자들도 간혹 사소한 실수나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에 수년간 진행한 연구에 타격을 입거나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몸을 다치기도 한다. 첨단과학계에서도 보험을 드는 이유다.

○ 600만 달러의 우주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지난달 초 미국의 보험중개회사 ISB와 계약을 했다. 지난해 12월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로 선발돼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고산, 이소연 씨를 위한 보험에 가입한 것.

한국 우주인은 훈련 중에 또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올라가 임무를 수행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릴 경우 100만 달러(약 9억 원) 안팎의 보험금을 받게 된다. 또 장비나 시설을 파손하거나 다른 나라 우주인을 다치게 한 경우에는 500만 달러(약 47억 원) 정도의 보험금이 나온다.

항공우주연구원 우주인사업단 최기혁 단장은 “ISS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우주인이 자국의 장비나 시설을 망가뜨려도 고의가 아니면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보험회사에 보상금만 청구하도록 서로 약속했다”며 “보험을 들지 않으면 우주선에 탑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주인 보험을 취급하는 회사는 ISB를 비롯해 전 세계에 4곳뿐이다.

○ 그물에 걸린 잠수정, 수억 받아

항공우주나 해양과학 등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도 보험 가입이 필수다.

인공위성을 개발할 때는 작업보험, 운송보험, 발사보험 등 여러 형태의 보험에 든다. 작업보험은 인공위성이 쓰러지거나 갑자기 전기가 나가는 등 개발 중에 일어나는 사고에, 운송보험은 위성을 발사장까지 운반하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다. 발사보험이 그중 가장 비싸다. 위성을 실어 쏘아 올리는 발사체에 문제가 생길 상황에 대비해 가입한다. 항공우주연구원 위성기술사업단 이주진 단장은 “발사 성공 확률은 80∼90%”라며 “지난해 발사 관련 사고가 4건(러시아 3건, 인도 1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발사된 아리랑 2호는 약 1600만 달러(약 150억 원)의 보험료를 냈다. 발사 후부터 1년 이내에 문제가 생길 경우까지 대비한 것. 이주진 단장은 “발사 후 1년 뒤부터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다시 궤도보험을 든다”며 “아리랑 2호는 7월 궤도보험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저 지형이나 심해 생물, 침몰선 등을 탐사하는 데 쓰이는 무인잠수정 역시 보험 가입 대상이다. 잠수정에 설치된 장비가 돌출 지형이나 생물에 부딪혀 손상되거나 최악의 경우 분실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해저 1500m까지 들어가는 무인잠수정을 운영하는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오염방제연구사업단 최혁진 박사는 “지난해 우리 잠수정이 침몰선 주변 그물에 걸려 일부가 파손돼 1억6000만 원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 방사광가속기 연간보험료 7000만 원

나라에서 운영하는 고가의 대형 연구 장비도 보험에 가입한다. 포스텍에 있는 포항방사광가속기가 1년간 내는 보험료는 7000만 원이 넘는다. 지진 같은 자연적 진동, 물리적 충격 등으로 장비에 문제가 생기거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경우 등에 대비하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대전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와 관련 원자력 시설에 대해 연간 약 1800만 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 원자력 시설의 사고로 큰 피해가 날 경우 보험회사의 손해배상 보험금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학기술부가 보상해 주게 돼 있다.

대형 연구 장비나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의 경우 천문학적 액수의 보험금을 한 회사가 감당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여러 보험회사가 그룹을 형성해 보험금을 나눠서 부담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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