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중독… 공황 발작… “마음병도 응급실로 오세요”

  • 입력 2007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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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병원 정신과 전문응급실에서 의사가 환자와 상담하는 모습. 일반 응급실처럼 산소호흡기는 없지만 때론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김재명  기자
국립서울병원 정신과 전문응급실에서 의사가 환자와 상담하는 모습. 일반 응급실처럼 산소호흡기는 없지만 때론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김재명 기자
《8일 오전 11시 45분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립서울병원 정신과 전문응급실. 30대 중반의 여성 A 씨가 가족에 의해 이끌려왔다. A 씨는 4일 서울의 집에서 사라진 뒤 이날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견됐다. 응급실까지 오는 동안 A 씨의 저항이 심했는지 어머니의 얼굴에는 손톱자국이 깊게 패 있었다. 간호사가 혈압 측정을 하려고 다가가자 A 씨는 “다가오지 마”라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철제의자로 벽을 두들기며 완강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를 잡기 위해 8명의 장정이 달려들어서야 50kg밖에 되지 않는 A 씨를 ‘제압’할 수 있었다. 안정제를 투여한 뒤 A 씨는 잠이 들었고 40여 분간의 난동은 끝났다. A 씨는 환청과 망상을 보이는 ‘편집형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됐다.》

A 씨는 목숨이 오가는, 명백한 정신과 응급상황을 맞았다. 이런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일반 응급실과 달리 환자들의 신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피가 튀지도 않지만 정신과 응급실의 상황은 긴박하다. 응급상황에 있는 정신질환자들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출혈 등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많은 일반 응급실에서 이들을 치료하기란 불가능하다.

국립서울병원 응급실은 이달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일반인 대상 정신과 전문응급실이다.

이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1월 초만 해도 환자는 2, 3일에 한 명에 불과했지만 보름새 하루 평균 2, 3명으로 늘어난 것.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가장 많고 자해, 자살미수, 정신분열 발작 환자가 그 뒤를 잇는다. 간혹 ‘조용한’ 환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A 씨처럼 난동을 부린다. A 씨의 난동이 있었던 이날 오전 2시경에도 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의료진과 1시간 가까이 대치(?)했다.

정신과 전문응급실은 내부 구조가 일반 응급실과 사뭇 다르다. 환자들의 자살을 막고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침대 높이는 30cm가량으로 낮다. 모든 출입구는 육중한 철문으로 만들어져 환자가 도주할 수 없도록 했다. 이곳에 정신과 전문의 한 명과 전공의 한 명, 간호사 두 명, 간호조무사 한 명이 상주하고 있다.

정신과 응급환자들은 발작을 하면 평상시보다 7∼10배에 이르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의료진도 위협을 느낀다. 한 남자 간호조무사는 “언젠가 키 185cm에 100kg이나 되는 거구의 남자 환자가 온 적이 있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응급실에는 직원들의 비상 탈출구가 마련돼 있다.

국립서울병원은 공황발작, 자살충동, 약물중독 응급환자를 주로 다루고 있다. 낮에는 환자 혼자 찾아도 되지만 야간(오후 6시∼다음날 오전 9시)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관 또는 소방관을 대동하거나 보호자를 동반해야 한다. 전문의가 24시간동안 정신과적 상태를 점검한다. 최대 72시간까지 격리 수용한 뒤 필요하다면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강제 입원시킨다.

병원 측은 정신과 전문응급실을 확대해 알코올 의존증이나 정신분열증 외의 정신장애 환자들도 자신의 상태를 수시로 체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실제 며칠 전 15세 여자 아이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응급상황을 의심해 스스로 찾아왔으며 상담 끝에 입원을 결정했다. 국립서울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72시간 기준으로 약 5만 원 선. 일반 병원 외래 진료비보다 10∼40% 저렴한 수준이다. 현재 24시간 정신과 전문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국립서울병원 서울시립은평병원 등 2곳 정도다. 서울시립은평병원은 행려환자가 주로 이용하고 있다. 02-2204-0175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윤보라(이화여대 약대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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