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 체증… 빈 주파수를 찾아라

  • 입력 2006년 4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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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날아가던 미사일이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떨어진다. TV방송에선 엉뚱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부엌의 전자레인지를 켜자 귀에 꽂은 무선전화인 블루투스폰이 먹통이 된다. 이들 시나리오의 공통분모는 모두 ‘전파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

○ 가용대역 95% 배정… 혼선 위험성 커져

최근 IMT2000,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초고속 휴대인터넷 등 새로운 방송서비스들이 늘어나면서 전파 자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엇비슷한 주파수를 사용하는 전자기기들이 늘면서 혼선을 빚거나 특정한 주파수를 두고 기업 간에 선점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두가 전파 자원이 신규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발생한 현상들이다.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전자파학회 국제워크숍에서는 잠자는 주파수를 찾아내 통신에 이용하는 ‘환경인식형 라디오’라는 새로운 기술이 소개됐다.

현재 한국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317.9∼5825MHz대만 하더라도 통신 방송 등 사용목적에 따라 68개로 나눠진다. 이 가운데 95% 이상이 이미 배분된 상태다.

한정된 주파수를 여러 용도에 배분하다 보니 그에 따른 문제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특히 사용 주파수는 같고 목적은 따로인 경우 심각한 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지난해 도입된 최신형 전투기 F-15K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기체와 함께 도입한 미사일의 조종 주파수가 국내 휴대전화 서비스 주파수와 같아 문제가 됐다. 정보통신부는 공군이 요청한 주파수 대역은 국내 이동통신 PCS와 IMT2000이 점유하고 있어 혼선 가능성이 있다며 ‘사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 위성통신 관련 국가 간 조정 매년 급증

잘 되던 무선인터넷이 갑자기 끊기는 것도 주파수 부족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현상이다.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수록 정보 소통로는 점점 복잡해지고 결국 통신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술좌석에 합석한 사람이 늘수록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힘들어지는 현상과 같은 이치다.

국가 간 이해관계도 점차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일본 위성 DMB가 국내 휴대인터넷과 같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한다고 발표해 문제가 됐다. 실제로 위성통신 혼선과 관련해 한국과 외국 간에 벌어진 조정활동은 2001년 201건에서 2003년 815건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 주파수 빌려 쓰는 ‘인식형 라디오’ 각광

수요가 늘어난다고 주파수 이용 범위를 마냥 넓힐 수는 없다. 높은 주파수를 주고받는 장치일수록 크기도 커지고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파수 품귀현상에 대비한 통신 기술이 최근 미국 국방연구계획청(DARPA)을 비롯해 인텔, 필립스 등 첨단연구소들이 참여해 개발하고 있는 인식형 라디오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기술전문지 테크놀로지리뷰 최신호는 미래 사회를 이끌 10대 기술 가운데 하나로 이 기술을 선정했다.

미국 MITRE 사 미톨라 박사가 제시한 이 기술은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를 찾아내 필요할 때만 잠시 빌려 쓰고 ‘튀는’ 개념. 일명 ‘잠자는 주파수 찾기’ 기술이다.

이미 다른 용도에 배정된 주파수를 또 다른 목적에 이용할 수 있어 주파수 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천덕꾸러기로 치부되던 잡음도 주목받고 있다. 잡음은 모든 주파수대에 걸쳐 발생하는 미세한 전파들이다. 최근까지 잡음은 깨끗한 통신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만 인식돼 왔다. 이 잡음은 신호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 안에 있는 전자제품 간 통신에 사용할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김창주 박사는 “인식형 라디오와 잡음기술이 실용화되면 주파수 체계를 뜯어고치지 않고서도 신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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