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영음]휴대전화가 사람을 휴대하는 세상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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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웬만한 집에서 잠들기 전 머리맡에 꼭 챙겨 놓아야 하는 것은 밤에 목이 탈 때 마실 수 있는 자리끼가 아니다. 휴대전화일 것이다.

중학교 1, 2년짜리 아이들은 잠들기 직전까지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친구들의 문자메시지에 답을 해야 한다. 어른들은 휴대전화로 알람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실 휴대전화 덕에 세상은 참 편해졌다. 어느 곳에서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데이터 서비스에 연결해 날씨나 교통 등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는 것은 이제 기본이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고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도 볼 수 있다.

휴대전화의 영역은 통신, 정보, 오락에 금융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휴대전화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휴대전화가 없던 세상은 어땠을까?

약속 시간에 늦는 상대방이 연락이 안 된다고 지금처럼 짜증내고 조급해 하기만 했을까. 아니면,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했던 것은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을 몇 시간이고 ‘기다려 주는 것’을 낭만적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확실한 것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심리가 늘었고, 반대로 우리들 마음의 여유는 줄었다는 것이다.

벨소리를 들으면 꼭 받아야 할 것만 같은 긴박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몇 시간 벨이 울리지 않으면 불안해질 것이다. 이 물건은 언제 어디서든 개인과 사회와의 연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걸려오는 통화에 얽매여 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다투거나,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을 아무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것도 휴대전화를 사용한 이후에 보게 된 풍경들이다. 이 물건을 붙들고 있으면 누가 듣든 상관하지 않는다. 온갖 비밀스럽고 사적인 얘기도 말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든 개인 용건을 보게 해 준다는 면에서 휴대전화는 개인의 ‘사적 공간’을 확대시킨다. 공공장소에서의 전화 예절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적 공간이 공공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미국의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휴대전화로 장시간에 걸쳐 큰소리로 욕을 지껄이던 여성이 ‘공공질서 파괴죄’로 경찰에게 연행된 사례가 있다. 공공질서와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미국인도 휴대전화 앞에서는 공사(公私)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미디어 비평가인 닐 포스트먼 뉴욕대 교수는 “문화사회는 기술이 도구로 사용되는 사회(Technology as a tool), 새로운 기술이 사회의 중심 화두가 되어 기존 문화와의 경쟁 및 긴장관계를 이루며 발전하는 기술주의사회(Technocracy), 그리고 기술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테크노폴리(Technopoly)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소개됐을 때 그 기술의 편리성에만 매료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과연 그 기술이 사회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계의 발명으로 더 편리하게 됐지만, 인간을 시간에 예속시켜 그 노예로 만들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자. 휴대전화의 편리함에만 매료되어 있을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의 휴대전화 보급률이 인구 대비 78%를 넘어섰다고 한다. 나의 삶이 휴대전화로 얼마나 변화되었고 나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혹시 우리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만 휴대전화를 끄고 살아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영음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미디어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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