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13년만의 비상

  • 입력 2002년 5월 14일 17시 56분


‘흑두루미의 아름다운 비상.’

13년동안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 한 마리가 1년여에 걸친 힘겨운 야생적응훈련과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내 유일의 흑두루미 도래지인 전남 순천만에 방사된지 5개월여만인 10일 고향인 시베리아로 떠난 16년생 수컷 흑두루미 ‘두리’.

두리는 1989년 말 순천시 한 야산에서 날개와 다리에 상처를 입은 채 동사무소 직원에게 발견돼 순천남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자랐다.

그러던 중 2000년 7월 순천지역 시민단체인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동사연) 연구원이 우연히 두리를 발견하고 학교장을 설득해 두리를 순천대 서면농장으로 데려왔다.

이 때부터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혹독한 시련이 시작됐다.

오랫동안 사육장에 갇혀 있었던 탓에 날개근육이 퇴화한데다 심한 스트레스로 간과 신장 기능이 떨어져 있었고 심폐기능도 매우 약한 상태였다.

닭 사료에 길들여졌던 두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연먹이를 섭취하는 훈련이었다. 동사연 회원들은 매일 단백질이 풍부한 미꾸라지, 지렁이, 민물고기 등을 구해다 먹였다.

회원들의 보살핌 속에 두리는 체중이 점차 늘고 털빛도 윤택해지면서 야생의 모습을 찾아갔다.

야생방사가 가능하다고 확신한 동사연은 지난 해 3월 ‘방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순천시 하수종말처리장 인근에 대규모 방사훈련장을 지어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두리는 처음에는 잘 날지 못했으나 운동량이 많아지면서 비행시간도 늘었다. 10월부터는 여수와 광양에 있는 골프연습장에서 발목에 낚싯줄을 매달고 하루 1시간씩 야외 비행훈련도 시켰다.

마침내 두리는 지난 해 12월30일 무게 4.6㎏, 한쪽 날개 길이 80㎝의 건강한 몸으로 순천만 대대뜰에서 비상의 첫 날개를 폈다.

두리는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흑두루미 무리와 한동안 어울리지 못하다 1주일쯤 후 겨우 한 가족이 됐다.

순천야생동물구조센터 김영대(金永大·40·수의사) 소장은 “힘든 훈련 때문에 발가락이 갈라지고 시름시름 앓을 때는 밤잠을 못 이뤘다”며 “두리가 장거리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올 겨울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두리는 비행 도중 별 사고가 없다면 현재 번식지인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리의 발목에는 무선 추적장치와 함께 무리와 구별하기 위한 반지가 채워져 있다.

한국두루미네트워크 배성환(裵成桓·33) 사무국장은 “무리와 떨어진 겨울 철새가 1, 2년 간 훈련을 받고 방사된 적은 있었으나 10년 이상 사육된 철새가 야생의 세계로 돌아간 것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순천〓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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