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를 보는 눈 거품상자…맥주거품에서 아이디어

  • 입력 2000년 7월 26일 18시 41분


일반인들이 입자물리학을 이해하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수학책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된 사람들에게 복잡한 수식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며, 양성자나 뉴트리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기에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동안 물리학자들에게 소립자의 운동을 볼 수 있는 눈 역할을 해 온 도구가 있었다. ‘거품상자’가 바로 그것으로, 소립자가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이온 주위에 기포가 형성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본래 소립자 관측의 원조는 안개상자다. 안개상자는 1912년 스코틀랜드의 윌슨이 만들었다. 과포화상태인 증기를 채운 상자 속으로 전하를 띤 고에너지 입자가 통과하면 그 길을 따라 액체 방울이 생기게 한 장치다. 따라서 입자를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들이 지나간 길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안개상자 속은 공기나 질소 같은 기체가 들어 있으므로 밀도가 낮아 에너지가 큰 입자는 거의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은 채 통과해 버리는 단점이 있다. 증기로 채워지는 안개상자에 비해 거품상자는 흔히 액체 수소나 액체 중수소로 채워지는데, 밀도가 높으므로 어떤 입자의 움직임도 자세히 관측할 수 있다.

대강의 작동 원리는 이렇다. 산에서는 밥을 지을 때 압력을 맞춰주기 위해 냄비 위에 돌을 얹는다. 이것은 압력이 낮아지면 끓는점이 내려가 설익은 밥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액체를 일정 압력 이상으로 압축하면 대기압에서보다 끓는점이 높아진다. 이 상태에서 액체를 정상 끓는점 이상으로 가열한 다음 갑자기 압력을 낮추면, 액체는 끓는점보다 높은 온도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끓지 않는 과열 상태가 된다. 이 속을 입자가 통과하면 입자가 지나간 길을 따라 액체가 끓으면서 기포가 발생한다. 이 기포를 카메라로 찍어 기록하면 그것이 곧 입자의 궤적을 나타내게 된다.

이 장치는 1952년 미국의 핵물리학자 도널드 글레이저가 개발했는데, 동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던 중 잔에서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서도 연구를 생각한 보람이 있어 글레이저는 196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영완과학동아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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