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관행이 전자상거래 가로막는다

  • 입력 2000년 7월 6일 19시 56분


최근 온라인상으로 컴퓨터 관련 제품을 사고파는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던 A사는 3개월만에 사이트를 폐쇄했다. 오픈 첫 달에 3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장사가 잘되고 네티즌들의 호응도 높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복병’을 만났기 때문.

우선 제품을 공급해주는 용산전자상가의 대형 유통상이나 거래선들이 부가가치세 환급을 받기 위해 필요한 세금계산서 발급을 극도로 꺼렸다. 탈세가 만연한 컴퓨터 유통시장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장 K씨는 “코스닥 등록을 위해서는 세금계산서 수수 등 회계가 투명해야 하는데 탈세를 위해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는 거래선들과 계속 장사를 하다가는 코스닥은 커녕 세무조사로 회사가 도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꿈을 접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B2C)이나 기업간 전자상거래(B2B) 사이트들이 오프라인 유통상들의 세금계산서 발급 거부와 높은 부가가치세율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비틀거리는 경우는 A사뿐이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B2B사이트의 경우 거래내역이 샅샅이 드러나는데 비해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상들은 매출 규모가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기 때문에 회원사 확보가 쉽지 않다. 어렵게 제품 공급선을 확보해도 무자료 거래로 10%의 부가세를 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오프라인 상점들과는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국과 대만 한국 등의 중소 컴퓨터부품 유통상을 끌어들여 B2B사이트를 오픈할 예정인 B사도 한국의 부가가치세율과 만연한 탈세 풍조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미국과 아시아권을 연계해 컴퓨터 부품을 거래하는 온라인 시장을 제공함으로써 오프라인 매장보다 싼 값에 거래를 성사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무역 기능까지 제공한다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

그러나 미국과 대만의 업체들을 사이트에 참여시키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한국의 부품업체와 유통상들은 물류비용 절감이나 거래의 신속성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이트 참여를 기피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한국의 대형 컴퓨터 유통상들은 소득세를 덜 내기 위해서 무자료 거래를 통해 외형을 작게 만드는 게 일반적인 관행. 최종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제품 값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도 정상적으로 세금계산서를 주고 받으면 나중에 부가가치세 확정 신고 때 환급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유통상들은 매출 규모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상적인 거래는 생각지도 않는다.

전문가들은 “10%를 부과하는 한국의 부가세율은 부가세 제도 자체가 없는 미국이나 부가세율이 5%에 불과한 대만 등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며 “한국 시장에서 세금을 정상적으로 물고 장사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무자료 거래를 단속하고 유통질서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터넷 비즈니스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거래 내역이 낱낱이 공개되는 전자상거래에 대해 세율을 낮게 적용하는 등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