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 불법감청 실태]검찰―법원도 脫法행위 방관

  • 입력 2000년 5월 12일 23시 20분


감사원이 12일 공개한 검찰 경찰 관세청 등에 대한 불법 감청 특감결과는 비록 적발건수가 33건에 불과했지만 수사기관의 불법 감청에 대한 ‘죄의식 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법 절차를 무시한 감청신청에 대해 감독기관인 검찰과 법원까지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감청을 허가해 줬기 때문이다. 다음은 감사원이 공개한 불법 감청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임의적인 감청〓불법 감청 사례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이 등장했다. 법정 감청기간은 3개월 이내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도 인천 중부경찰서 등 3개 경찰서는 감청기간이 3개월4일에서 5개월26일에 이르는 감청을 버젓이 신청했고 인천지검 등 검찰은 이 같은 신청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 법원에 감청을 청구하고 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통신사업자에게 통화사실명세 등을 요청할 때 경찰서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도 몰래 관인을 찍었고 경기 광명경찰서는 조회대상자 명단에 없는 사람을 임의로 끼워넣어 통화명세를 넘겨받았다.

경찰과 전화국 감청협조 전담직원(시험실장)의 ‘봐주기’도 문제. 경찰관이 경찰서장의 ‘긴급통신제한조치장’의 문서를 가져오지 않아도 전화국 직원이 ‘안면’으로 불법감청에 협조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휴대전화 무선호출 E메일〓휴대전화 무선호출기 음성사서함의 감청은 통신사업자가 메시지 내용을 출력해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하는데도 아예 정보통신부의 지침에 따라 감청에 필요한 비밀번호 자체를 수사기관에 몽땅 제공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 경우 감청대상자가 비밀번호를 변경하지 않는 한 법원의 허가기간과 관계없이 수사기관이 언제든지 감청이 가능해진다.

▽민간 사설기관 감청〓경찰은 현재 2만여점의 불법 감청설비가 시중에 나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400여개의 심부름센터와 일부 도청탐지업체, 사적인 정보수집 등의 수요에 따라 불법 감청설비가 유통되고 있는 셈. 불법 감청의 ‘수요’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공급’을 근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시내전화 사업자가 설치한 옥내외의 전화단자함 관리가 허술하다는 점도 사설 불법 감청의 원인이 되고 있다.

▽불법 감청 특감의 허점〓감사원이 불법 감청 특감에 나서게 된 원인제공자였던 국가정보원이 이번 감사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99년 들어 경찰 검찰은 감청 횟수가 크게 감소했지만 국정원은 오히려 4.2%가량 증가했다. 국가정보원법 13조는 국가기밀 사항의 경우 감사자료의 제출과 답변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고 국정원은 이 같은 규정을 들어 자료제출을 거부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디지털 휴대전화 감청되나

최근 대중화된 디지털방식 휴대전화의 감청 여부를 놓고 감사원과 통신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감청 감사를 담당했던 감사원의 홍기완(洪起完)과장은 “지난해 말에 서비스를 중단했던 아날로그 방식 휴대전화의 경우 수사기관에서 감청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디지털 방식의 휴대전화 감청은 현재까진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디지털 휴대전화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으로 암호화돼 전송되기 때문에 사실상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것. 홍과장은 “수사기관에서 한때 감청이 가능한지 기술적으로 검토한 적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르다”며 디지털 휴대전화의 감청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감청하려는 사람의 휴대전화 단말기에 똑같이 입력된 고유한 비밀번호인 ‘헥사코드’를 알아내 다른 단말기에 똑같이 입력하면 된다는 것.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코드가 복사된 이쪽 단말기에도 함께 벨이 울리고 음성량의 손실 없이 그대로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이미 선진국에선 휴대전화끼리의 감청도 어려운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긴다. 이와 관련해 국민회의(현 민주당) 김영환(金榮煥)의원은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장에서 실험을 통해 디지털 방식 휴대전화의 도청 가능성을 부분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실제로 감사원이 확인작업을 벌인 수사기관에는 국가정보원이 빠져 있어 휴대전화 감청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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