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올 국내 출판시장 뒤흔든다

  • 입력 2000년 4월 9일 20시 50분


미국의 베스트셀러작가 스티븐 킹이 자신의 첫 전자책(eBook) ‘총알 자동차타기(Riding the Bullet)’를 펴내 화제를 뿌린 것이 3월14일. ‘남의 나라 얘기’로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올 상반기 중 한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전자책 판매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21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규현 교수(수학과) 주도로 전자책 공개시연회가 열린다. 이날 오프라인 대형출판사인 김영사가 자회사인 ‘디지털 김영사’의 문을 연다. 김영사 박은주 사장은 “디지털 김영사에서 판매할 전자책 1차분 60여종에는 김영사의 베스트셀러인 스티븐 코비의 ‘7가지 습관’ 시리즈 등이 포함돼 있다”며 “6월1일까지는 전자책이 어떤 것인지를 일반에 알린다는 차원에서 무료로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출판인회의 소속 출판사들도 지난주 ‘이북솔루션스(eBook solutions, 대표 고규현)를 1차적인 전자책 개발자로 선정해 전자책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영사 현암사 한길사 푸른숲 문이당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 등이 상반기 시장보급을 목표로 기존 간행물 중 전자책으로 펴낼 책들을 고르고 있다.

:출판,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자책’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선 전자책 성립에 필요한 조건들을 보자.

첫째, 인터넷 환경이다. 전자책은 책 내용을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인터넷 상에서 독자들이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얼핏 웹컨텐츠와 비슷해 보이지만 유료복제인 것이 커다란 차이. 최근 킹의 전자책이 해킹 당한 사건으로 무단복제를 막는 보안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다시한번 입증됐다.

둘째는 기존의 종이책 소스를 전자책으로 만드는 기술(tool)이다. 현재 국내 여러 컴퓨터프로그램업체들이 출판사와 작가들을 대상으로 “전자책을 만들어 주겠다”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셋째는 종이책처럼 아무 곳에서나 꺼내서 전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휴대용 단말기의 보급이다.

전자책이 구체적으로 독자들의 삶에 가져올 변화는 무엇일까?

먼저 독자들은 ‘읽는 문자 책’에서 ‘읽고 보고 들을 수 있는 디지털책’으로의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전자책 백과사전에서 ‘화산’이라는 항목을 읽을 때는 화산이 분출하는 전과정을 동영상으로 보며 그 폭발음을 듣게 될 것이다.

‘자기만의 책’ 만들기도 가능해진다. 하이퍼링크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이책저책에서 한 장씩 끌어다가 맞춤형 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책값도 저렴해진다. 일례로 디지털김영사는 종이책 가격의 70%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전자책 가격을 책정할 계획이다.

출판사가 겪게 될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제작비 감소와 제작기간의 단축이다. 문서중심인 350쪽 분량의 소설책 한권을 전자책으로 만드는 비용은 5만원선. 제작기간은 하루면 충분하다. 종이책의 경우 평균 제작기간 2개월에 3000부 기준으로 제작비는 2000만원선이었다. 소수의 독자만 있어도 제작비를 건질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책을 내 줄 수 있다.

그러나 전차책의 미래가 반드시 낙관적인 것 만은 아니다. 먼저 전자책으로 생기는 수익을 작가와 출판사 전자책기술을 개발해 디지털화한 업체가 어떻게 나눠갖는가 하는 문제. 창작과비평사 김이구국장은 “전자책의 경우 영화 연극같은 2차 저작으로 볼 수 없어 종이책과 통일된 계약을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계 계약관행의 전면개편이 불가피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민스러운 사람은 편집자들이다. 하나의 원고를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동시에 만들어낼만한 역량이 요구되는 것이다. 편집자의 ‘경험’도 과거에 비해 폄하될지 모른다. 텔레비전 시청률처럼 히팅건수에 따라 독자 성향을 파악해 책을 기획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차세대 '전자책 단말기' 국내교수들이 만든다

‘전자책’은 어떻게하면 볼 수 있을까. 간단하다. 현재 갖고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 노트북으로도 내용만 다운로드 받으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종이책에 비해 너무 무겁고 기동성이 떨어진다.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전자책 활성화의 관건으로 거론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주)이키온(www.echyon.com)의 임중연대표이사(34·동국대 교수)는 이 단말기 개발의 국내 전문가. 이키온은 서울대와 동국대를 중심으로 38명의 교수들이 참여해 만든 ‘교수 벤처’다.

“노트북보다는 작아서 휴대하기 편하면서도 전자책이나 신문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모니터 크기가 보장돼야 합니다. 물론 인터넷과 연결돼 통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희가 만들고자하는 단말기는 단순히 전자책만 읽는 도구가 아니라 차세대형 PC죠.”

이키온이 올 가을 출시 예정으로 개발 중인 단말기는 A4용지 절반크기보다 조금 작고 두께는 3cm정도. 첫 출시품에는 인터넷 연결기능이 내장되지 않지만 핸드폰과 연결하거나 PC와 연계하는 방식을 통해 전자책 내용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가격선은 20만원대에서 결정될 전망.

“단말기 사업의 장기지향은 국가적으로 추진되는 교육정보화 사업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미 싱가포르에서 실험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교과서없이 전자책 단말기 한 권에 교과서 내용을 모두 넣어다니는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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