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짧고 굵게”… 1시간 넘길땐 ‘회파라치’가 팀 고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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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돌려주세요]<7>‘스마트워커’ 키우는 기업들
LG전자 ‘111 캠페인’ 공기업 확산… 글 스톱워치 화면 띄우고 압축회의
업무효율 높이고 근로시간 단축… 年 수십조원 비용절감 효과 기대

#1.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고, 기획서 보완해서 내일 다시 회의를 하지.”

2시간을 훌쩍 넘긴 회의는 결국 결론 없이 끝났다. 아니, 기획서 보완과 2차 회의라는 결론이 나오긴 했다. 결국 똑같은 회의를 다시 준비하는 게 결론 아닌 결론인 셈이다. 내일도 다른 업무를 제쳐두고 기획서 보완 등 회의 준비만 하다 보면 진이 빠질 것 같다. 상관 마음에 드는 기획서를 만들려면 야근은 필수다. 그렇다고 다음 회의에서 결론이 나리란 보장은 없다. 기획서를 미리 만들어 배포해도 아무도 읽지 않고 회의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2. 회의 한 시간 전 자료가 미리 배포됐다. 회의 참석자들은 서둘러 자료를 숙지하고, 논의할 내용들을 정리했다. 1시간 뒤에 회의가 시작됐고, 회의실 정면에 설치돼 1시간으로 설정된 ‘스톱워치’가 흐르기 시작했다. 자료를 이미 읽은 참석자들은 스톱워치 탓인지 의견을 되도록 짧고, 압축적으로 말했다. 회의는 40여 분 만에 끝났고, 1시간 뒤 회의 내용이 요약돼 참석자들에게 전달됐다. 다음 주에는 좀 더 진전된 내용을 가지고 회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회의 준비를 위한 야근도 사라졌다.

○ ‘스마트워크’로 ‘스마트워커’ 양성

LG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1시간 전 자료 공유 △1시간 내 회의 △1시간 내 회의 결과 공유란 뜻의 ‘111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회의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아이러니를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하는 회의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단순 캠페인에 그치지 않기 위해 1시간이 넘도록 회의를 하는 팀을 고발해 개선을 압박하는 ‘회파라치(회의 파파라치)’ 제도도 운영했다.

무조건 열심히 오래 일하고, 상관들이 주도하는 수많은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했던 당시 기업문화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특유의 근로문화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캠페인은 성공적이었다. 직원들은 더이상 회의자료를 만드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고, 남는 시간에는 아이디어를 내는 데 집중했다. 이 캠페인은 최근 정부조직에도 전파돼 공공기관의 관료화된 회의 문화를 개선하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근로자의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려면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는 회의나 회식, 야근을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시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필수다. 특히 전문가들은 짧고 굵게 일하는 ‘스마트워커(Smart Worker)’들이 많아지고 이들이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문화와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스마트워커란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시켜 짧은 시간에도 높은 성과를 내고, 자신의 여가도 충분히 즐기는 근로자를 뜻한다.

구글 역시 스마트워커 양성을 통해 기업 전체의 혁신을 유도한 대표적 기업이다. 구글은 직원들이 회의를 할 때 △회의자료 △회의록 △스톱워치 등 3개의 화면을 동시에 띄우도록 한다. 별도의 작업 없이도 회의 내용과 결과가 자동으로 기록되고, 참석자들은 실시간으로 내용을 숙지한다. 회의록 작성자는 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정리하고, 참석자들은 자기 의견이 잘못 반영될 경우 즉시 요청해 수정한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이 1m 크기의 스톱워치 화면을 통해 짧은 시간에 이뤄질 수 있도록 통제된다.

한상엽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사전 준비가 안 된 회의, 서면 대체 가능한 회의 등 ‘의미 없는 회의’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문제”라며 “회의의 주제를 명확히 하고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문화와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 비용 줄고, 생산성은 향상

스마트워크 문화를 정착시키고 스마트워커들을 대거 양성해 효율적인 업무시스템을 구축한 기업들은 그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영국 통신회사 브리티시텔레콤(BT)은 1993년부터 △일자리 공유 △완전재택근무 △부분재택근무 △유연근무제 △스마트워크센터 등으로 요약되는 ‘BT 워크스타일’을 실시해 연간 7억2500만 파운드(약 1조30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BT 직원 10명 중 9명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고, 1993년 190만 m²였던 사무실 면적은 2006년 74만 m²로 줄었다. 특히 재택근무나 유연근무 중인 근로자의 생산성이 일반 근로자의 생산성보다 20% 이상 높았고 회의 30만 건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들이 개인 용무나 비효율적 업무 때문에 소모되는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간 146조 원에 달했다. 특히 하루 평균 2시간 30분씩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인 업무에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 관계자는 “비효율적인 업무 시간의 일부만 줄여도 연간 수십조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창연 한국경제경영연구원장은 “기타 비용을 줄이려고 애쓰는 것보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비용 절감 방법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며 “업무 지시와 회의, 결제 단계마다 전자적 프로세스를 확실히 구축해 생산성을 높이고 규칙과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스마트워커#스마트워크#LG전자#111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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