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절대품질을 위한 경쟁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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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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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럭셔리 브랜드의 심장, 유럽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수요 위축으로 수익성이 예전만 못한 측면이 있지만 이들이 느끼는 위기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듯하다. 바로 장인(匠人)들의 수가 현저히 줄고 있어서다. 수십 수백 년 면면히 이어져온 장인정신은 프랑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를 품질과 가격 면에서 세계 최고에 올려놓은 핵심 요소다. 에르메스의 켈리백과 버킨백은 ‘더블 스티칭(두 줄로 이어진 바늘땀)’이라는 숙련된 기술자의 정교한 수작업 덕분에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줄’ 정도로 오래 쓰는 핸드백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런 봉제 기법에 익숙해지려면 최소 4년의 훈련과정이 필요하지만 젊은이들이 외면하고 있다.

기술 인력이 고갈되고 있는 것은 럭셔리 브랜드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프랑스 이탈리아의 명품 업체들은 글로벌 위기 이후 고임금과 유로화 강세를 피해 생산기지를 중국 인도 등 아시아로 대거 옮겼다. 저임금 아웃소싱을 활용한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하면서 수익성에 도움은 됐지만 럭셔리 브랜드의 상징이던 유럽 본토의 수공업 공장들은 일감을 잃어 명맥 유지조차 쉽지 않게 됐다.

명품업체들의 해외 아웃소싱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품질이 떨어질 가능성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세계 명품 시장 규모는 약 2290억 달러로, 유럽 럭셔리 브랜드가 이 가운데 75%를 차지한다. 명품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에선 숙련 기술자들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 고용하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디자이너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의 발길을 되돌릴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대량생산과 품질유지는 럭셔리 산업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소비시장이 선진국 수요를 상당부분 잠식하면서 해외 아웃소싱과 대량생산의 유혹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일본 도요타의 리콜 사태에서 대량생산 체제에서 간과할 수 있는 품질 저하를 목격했다. 세계 1위 자동차 생산업체라는 달콤한 유혹은 고객의 신뢰마저 저버릴 만큼 강력했지만, ‘잔고장 없는’ 차라는 명성에는 치유하기 힘든 흠집을 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게도 도요타 사태는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오랜 기간 ‘품질경영’을 입에 달고 살았다. 혼신을 다해 품질향상에 매달린 결과가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제고로 나타났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내보다 외국 생산물량이 더 많아진 상황에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더 정밀한 품질경영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삼성도 비슷한 위기 인식을 공유하는 것 같다. 삼성은 해외 생산제품의 품질 위기를 도요타 사태의 원인으로 분석하고, 글로벌 사업장의 품질점검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쟁사와의 상대적 우위가 아닌, 일정 수준 이상의 ‘절대 품질’ 확보가 목표라고 했다.

품질 확보 측면에서는 치열한 경쟁만 한 특효약이 없다. 경쟁은 자만을 경계하고 항상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의 당진 일관제철소 준공은 포스코의 고로(高爐) 독주체제를 깼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같은 관점에서 국내차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일방독주는 바람직한 시장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강운 산업부 차장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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