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스인훙]‘화평굴기’를 다시 생각하며

  • 입력 2007년 1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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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부가 2003년 이후 대외 정책으로 천명해 온 ‘화평굴기(和平굴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섬)’는 중국 학계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광범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내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하다. 한쪽은 ‘화평’이라는 말이 중국의 군사 현대화에 대한 의지를 약화시키고 강대국 미국에 대한 환상을 심화시킨다며 불만이다. 또 중대한 충돌이 발생했을 때 대항 의지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은 ‘굴기’가 불만이다. 이 말이 외국인의 의구심을 가중시키고 중국의 무모한 돌진이나 민중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논쟁이 일자 중국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정치적 수사’를 ‘화평굴기’에서 ‘화평발전(和平發展·평화로운 발전)’으로 바꿨다.

그러나 ‘굴기’와 ‘발전’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발전이란 모든 국가에 필요한 것이다. 굴기는 강국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굴기란 개념과 강대국화의 목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화평굴기 개념에 찬성한다. 화평굴기는 앞으로 20∼25년간 중국이 지녀야 할 국가 방향이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적합한 대외 강령이다. 또 중국 여론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중국의 대외 기본정책과 전략을 종합하는 개념이다.

화평굴기의 요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이 세계 강국으로 우뚝 일어서길 원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은 강대국과 전면전을 벌이거나 지속적인 냉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이 바라는 강국은 지속 가능한 일등 강국이지 이전처럼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진 그런 강국은 결코 아니다.

화평굴기는 일부에서 비판하듯 ‘절대 평화’를 뜻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경우에 정책적 수단으로서 군사 충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충돌을 피하지 않으면 화평은 없다.

화평굴기는 중국의 굴기를 걱정하는 다른 나라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지엽적인 전략으로 공표돼서는 안 된다. 화평굴기를 둘러싼 논쟁이 수사학적 토론에 그쳐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화평굴기는 중국이 걸어가는 미래의 방향 및 명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누차 화평굴기의 관건은 중국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혁신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역사에서 진정으로 흥성한 국가는 모두 발전 과정에서 세계 역사상 뜻 깊은 혁신을 실현했다.

중대한 역사적 혁신이란 기본적으로 가치관에서 공헌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자국 인민을 고무시킬 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최근까지 가치관과 정치문화에서 아직 네덜란드와 영국, 미국이 했던 역사적 공헌을 해내지 못했다.

네덜란드는 개방적인 사회와 종교적 관용, 공해의 자유와 국가주권을 주창해 세계에 널리 퍼뜨렸다. 영국은 헌법에 따른 정부 구성과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미국은 자결권을 주창하고 유엔 등 세계 조직과 민주정부를 세웠다는 점에서 커다란 공헌을 했다.

이 점에서 중국은 자각이 있어야 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일찍이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통일독일이 깊고도 넓은 목적이 없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비스마르크는 대외 책략에서는 뛰어났지만 진보적인 가치 건설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그는 독일의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막지 못했고 결국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는 중국은 물론 강대국이 되기 위해 굴기하려는 모든 나라가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스인훙 중국 런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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