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승경]中2 수학 세계2위 실력 어디로 갔나

  • 입력 2006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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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03년 한국 중학교 2학년 수학 실력 세계 2위, 과학 실력 세계 3위’라는 외국 평가 기관의 발표가 있었다. 이는 학업성취도국제연합회(TIMSS)가 4년마다 전 세계 45개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 시험에는 각국에서 무작위로 뽑힌 학생들이 참가한다. ‘평균 성적’에서 높은 등수를 차지한 한국은 긍지를 가질 만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세계 20위권 밖이다. 수학 등 기초과학 수준은 이보다 훨씬 낮다. 세계 2, 3위라는 중학생의 실력과 놀라운 격차다. 한국의 무역 규모나 국민소득 수준이 세계 10위 안팎인 것에 비해서도 만족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이는 선진 지식기반 사회로 나아가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세계 정상급인 한국이 왜 ‘수학 강국’으로 연결되지 못할까?

한 국가의 수학 수준은 ‘평균 실력’이 아니라 고도의 수학적 상상력을 가진 ‘소수의 수학 엘리트’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평균성적 세계 2위의 중학생’ 중에서 ‘특출한 수학적 재능을 가진 엘리트’를 선별해 육성하는 시스템이 부족한 것이다. 무엇보다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을 학교에서 발굴하는 시스템이 매우 빈약하다. 극소수 학생이 과학영재교육원이나 영재고등학교, 특수목적고 등에서 배우고 있지만 이것도 대학 입시와 관련이 없지 않다. 중고등학생 중 수학에 재능이 있어도 이를 지속적으로 키울 시스템이 없으니 최고의 수학 엘리트를 육성하기가 어렵다. 우선 수학 영재를 어떻게 발견해 어떤 교육과정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등에 대해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광복 이후 바뀌지 않은 중등교육제도도 문제다. 일제강점기에 물려받은 교육과정과 학제가 크게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교과과정은 7차례 바뀌었지만 수학의 경우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특히 수학 교과서는 집필진이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거의 없다. 정부가 정한 세세하고 엄격한 집필 ‘가이드라인’ 때문에 교과서 종류는 많지만 내용이 획일적이다. 이런 교과서로 한 학년 45만 명의 학생이 수업을 한다.

셋째, 수학을 포함한 이공계 전임 연구원이 부족하다. 2002년 기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발표에 따르면 이공계 전임 연구원이 미국 133만4628명, 중국 81만525명, 일본 64만6547명, 한국 14만1917명이었다. 미국 인구가 우리나라의 약 5배인 것 등을 감안해도 크게 부족한 편이다. 더욱 전문화된 이공계 전임 연구원을 늘려야 한다.

넷째, 일선 학교의 수학 교사들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 수학에도 세분된 전공이 있으므로 한 분야를 전공해 깊이 있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미국의 한 유명 대학 교수는 방학 기간에 고등학생들과 같이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과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고등학생이 교수와 공동 연구를 한다고?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은 어떤가. 대학과 공동 연구는 요원하다. 아침 일찍 등교해 밤늦게까지 학교와 각종 학원에서 제한된 내용만 반복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마치 붕어빵을 찍어 내는 기계와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을 선도할 인재는 대학에 들어가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초중등교육에서 이미 싹이 자라야 하고, 이를 일찍부터 자유롭게 키우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박승경 연세대 교수·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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