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칼럼]미국의 知人에게 보내는 편지

  • 입력 2004년 10월 28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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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일이 다가왔습니다.

결국 이라크전에 관한 국민투표처럼 되었군요. 외교 안보가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대선 이래 처음이군요.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 간에 이라크와 중동 정책이 얼마나 다른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군요. 종반에야 케리 후보가 차이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둘의 차이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차이 정도라고 할까요. 이렇게 말하면 두 회사가 야단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대선에서는 ‘4년 전에 비해 생활이 나아졌습니까’ 하는 말이 많았지요. 이번은 어떤가요.

경제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는데 문제는 정치와 외교이지요. 그중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면 생활이 옹색해진 게 틀림없어요. 9·11테러 이후 미국은 스스로 성을 쌓아 올리고 있는 것 같군요. ‘반테러 애국법’이라는 국민감시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귀하는 조지 오웰의 소설에 빗대 ‘1984년적 상황’이라고 불렀지요.

전에 ‘이라크에서의 실패’가 미국 내에 역류, 반동을 가져올 게 두렵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한국전쟁 때 매카시즘, 베트남전쟁 때는 반체제 운동의 폭풍이 몰아쳤지요. ‘이라크에서의 실패’가 미국의 정치와 사회를 갈라놓고 그것이 미국을 더욱더 ‘관용하지 못하는 나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평판은 4년 전에 비하면 몹시 나빠졌지요. 많은 나라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보다 미국을 더 위협적인 존재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반미주의’는 21세기의 주요 이데올로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저는 미국이 공포감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정치와 외교에서 벗어나 예전 같은 대범함과 여유를 되찾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작가 존 르 칼레는 “진정한 미국인이 오는 때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 기분 이해됩니다. 전에 제가 미국에서 지낼 때 신세졌던, 그 가슴 따뜻하고 유머 넘친 ‘진정한 미국인’을 회상해 봅니다.

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 점령군한테 초콜릿을 받았던 세대입니다. 당시 미군 승용차 종류를 그린 그림책이 있었는데 그걸 손에 들고 길가에 서서 멀리 오는 차를 보며 차종 알아맞히기에 열중했던 일도 있습니다. 스튜드베이커라는 회사 차가 맘에 들었지요. 한참 뒤에야 이 회사의 폴 호프먼 사장이 마셜 플랜 실시 기관을 지휘했던 일과 전후 미국의 재단으로 하여금 일본 문화·학술연구를 지원하도록 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역도산과 엔도 2인조가 샤프 형제에게 지는 통에 관중석에 소란이 일었을 때 떠밀리다시피 아버지와 함께 경기장을 나오다 미군이 호스로 내뿜은 물벼락에 혼비백산한 일도 생각납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매력은 무엇보다 소프트 파워(지력, 문화력)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시의 미국’은 그걸 내팽개친 것 같군요. 케리 후보가 다시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미국을 만들자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도 하드 파워(군사력)에 의한 공포감으로 세계를 지배하지 않고 소프트 파워의 약동감으로 세계를 넉넉하게 해주는 나라를 만들자는 뜻인가요.

소프트 파워는 민주주의가 갖는 활력,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 대화와 타협의 습관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지금은 이를 되찾는 미국 사회의 복원력이 시험받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미국인 스스로 ‘미국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해야 하는 운명적 선거입니다.

투표일 워싱턴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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