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경주 남산'…'신라인의 얼굴'

  • 입력 2003년 10월 16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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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은 서울에도 있고 경주에도 있다. 아니 어느 동네에나 있는 남산은 앞산이다.

풍수지리로 말하자면 남산은 집 앞을 지켜주는 담이나 마찬가지이다. 산 하나로 담을 삼았으니 통도 컸다. 그런 담에 자기들이 보고 싶은 보살상을 새겨 놓은 옛 경주 사람들은 멋지기까지 하다. 경주 남산의 그 숱한 마애불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이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바위에다, 그들이 그리워하던 세계를 새긴 경주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소박한 예술혼의 소유자들이었다.


작은 덩치라고 하나 경주 남산에는 골짜기도 많다. 하루에 한 골짝만 돌더라도 두 달은 넘게 걸릴 정도이니, 웬 작은 산 하나에 사연이 그토록 많아 구구절절이 주름이 잡혔을까.

삼릉골을 따라 그 골짜기 끝에 가파른 벼랑처럼 서 있는 정상으로 오른다. 가을이 익을 대로 익은 숲길과 순환도로를 지나자 용장사(茸長寺) 자리라는 조그마한 터가 나온다. 북쪽으로 남산의 다른 한 줄기인 금오산이 보이는데, 조선초기의 문호 김시습(金時習)이 여기에 머물며 몇 편의 소설을 짓고는 ‘금오신화’라 이름 했다는 곳이다. 지금은 삼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 그리고 석불좌상이 남아 옛 모습을 희미하게 전해주고 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머리 부분이 날아간 엽기적인 모습의 석불좌상이다. 세월의 상처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어른 키 높이만큼이나 되는 특이한 좌대다. 왜 좌대를 이렇듯 높이 만든 것일까? 용장사 터만 해도 남산에서는 꽤나 높은 곳인데, 얼마나 더 높아지고 싶어서.

이런 의문은 석불상이 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주어보면 풀린다. 석불상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서방정토를 그리는 한결같은 마음이다. 그런데 그쪽으로는 금오산의 한 줄기가 내려와 시선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시야가 가리는 곳에 보살상을 세워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위치는 그대로 두되 능선 너머 서방정토를 바라보게 하려면 좌대를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곧 좌대 높이만큼이라도 우리의 이상과 정신을 높이라는 불상의 무언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 한번쯤 새로운 꿈에 눈길을 주자면 조금은 이 땅과 떨어져야 한다.

남산에 새겨진 불상들은 하나하나 이렇듯 자기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삼릉골을 따라 오르자면 만나는 선각여래좌상은 마치 그것을 조각한 이의 얼굴을 닮은 듯 투박하게 생겼고, 상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바위를 약간 파들어 가며 새긴 품이며 아늑함이 어디에 견줄 수 없다. 남산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마애관세음보살상은 석양 노을을 받은 냇물의 빛 그림자가 얼굴에 비치면 그 자태가 절정에 이른다.

어디 그뿐이랴. 바위 전체를 하나의 몸통으로 삼고, 그 위에 작은 바위를 하나 올려 머리를 삼으려 한 듯한 약수골의 마애불로 눈을 돌려보자. 깎아지른 능선을 이루던 바위 하나 전체가 어느덧 불상으로 바뀌어 있다. 영화 스크린처럼 넓적한 바위가 서 있는 곳에는 선(線)만으로 온갖 종류의 보살상을 새겨 넣는다. 삼릉골의 선각육존불이다.

경주 남산의 예순이 넘는 골짜기를 어느 길을 택해 올라가더라도, 세월에 깎였지만 불상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새긴 이의 얼굴을 희미하게 전해주는 마애불의 한바탕 잔치를 만끽하게 된다.

글=고운기 동국대 연구교수 poetko@hanmail.net

사진=양 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tophoto@korea.com

:촬영노트: 경주 남산은 바위투성이다. 하지만 그냥 바위가 아니라 신라인들이 마음을 새겨 놓은 특별한 바위들이다. 금오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상선암 마애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천년도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과 늘 만나고 있다.

남산에 있는 불상이나 탑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면 누구나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까 사진 찍기가 쉬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으로 잘 표현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자주 찾아가 계절과 자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남산이 제일 아름다운 때는 5월 초와 10월 말이다. 해뜰 때 동쪽의 칠불암 쪽으로 올라가 신선대, 용장사터, 금오산을 지나 오후에 서쪽의 삼릉으로 내려오면 많은 유적을 하루에 둘러볼 수 있다.

사진=양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tophoto@korea.com

이 많은 마애불을 만든 이들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경주에 사는 온갖 사람’이라 말해야 옳을 듯하다. 마애불의 가짓수가 많은 만큼, 새긴 모양이 제각각인 만큼.

그런데 오늘 남산을 오르며 곰곰 생각해 보니, 누가 와서 만들었건, 그것은 신라 사람들에게 다름 아닌 ‘큰 바위 얼굴’이었으리라 싶다. 경주 사람들은 부처의 얼굴을 스승으로 알고 바위에 그려, 자신과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부처는 곧 자신들의 얼굴이 되었고.

697년 신라 효소왕이 왕위에 오른지 6년째의 일이다. 왕은 거창한 절을 지은 다음 승려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벌이며 한껏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효소왕은 빛나는 김춘추 집안의 후손인 데다 통일 후의 신라는 성세를 구가하고 있었기에 그의 태도는 오만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 자리에 경주 남산 비파암에 산다는 초라한 승려가 끼어든다. 왕은 좋은 분위기를 깰 수 없어 마지못해 한 자리 마련해 주는데 자리가 파할 무렵 왕은 기어이 일을 내고야 만다. 이 승려에게 다가가 “이제 나가거든 왕이 친히 베푸는 자리에서 밥을 얻어 먹었다고는 말게”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승려의 놀라운 대답. “왕도 진짜 부처님을 공양했다고는 말하지 마소서.”

말을 마친 승려가 몸을 날려 남산 쪽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며, 왕의 신하들이 부랴부랴 쫓아가 보니 ‘삼성곡(參星谷)의 대적천원(大적川源)’에 이르러 바위 속으로 숨어버리더라는 것이며, 거기 지팡이와 바리때가 남아 증거물이 되었다는 것이며, 놀란 왕이 절을 지어 승려가 남긴 물건을 간직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사족으로 치고 말아도 좋다.

우리는 이 한 장면에서 무엇이 진정한 믿음이며 올바른 삶의 태도인가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승려는 바위 속으로 숨었다고 한다. 바위는 민간신앙의 표본인데, 어느새 신라 불교는 민간의 바위신앙과 어울렸다는 것이므로, 사실 이 승려는 바위를 신으로 알고 모시던 신라인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큰 얼굴인지 모른다.

‘큰 바위 얼굴’은 결코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저 묵묵히 바위의 위용과 무게를 스승으로 알고, 거기서 가르침을 얻으려 했던 신라인이 있었으니 말이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경주 남산 서쪽은 반월성을 출발해 포석정 쪽으로 가면 좋겠다. 도중에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탄생지를 들를 수 있고, 포석정에서 다시 1km쯤 더 가 삼릉골로 오르기 전에 경애왕릉과 배리삼존불상을 볼 수 있다. 이 주변은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어서 쉬어 가기에 좋다.

포석정과 경애왕릉은 역사적인 비극의 현장이다. 고려 왕건과 가까이 지내려 하는 신라를 치러 후백제 견훤이 들이닥쳤을 때,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놀다 변을 당했다.

이 때문에 포석정이 옛 신라왕들이 놀던 장소로만 알려졌지만 단순한 놀이터 이상의 의미를 가진 곳으로 보는 쪽이 더 맞겠다.

드디어 삼릉골의 완만한 골짜기를 따라 남산에 올라 걷다보면 굳어 있던 다리가 슬슬 풀리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남산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 묘한 기분을 무어라 설명하지 못할 신비로 받아들인다. 그냥 산이 아니라 어떤 영험이 서린 성지로까지 생각된다.

삼릉골에서 남산의 다른 한 줄기인 금오산 정상에 오를 때까지 앞서 소개한 마애불들과 기타 다른 여러 유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금오산에 올랐다가 조금 지나 용장사터에 이르게 되는데, 그 터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자면 남산에서 가장 높다는 고위산(수리산이라고도 한다)이 넉넉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산의 크기를 떠나 작지만 어떤 위엄이 있음을 실감하는 곳이다.

용장사터와 고위산 사이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얽혀 있는데, 이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비파골과 용장골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골짜기 모두 어느 계곡으로 내려가면 좋을지 망설이게 할 만큼, 단번에 뿌리치지 못할 유혹이 따라와 발걸음을 붙잡을 것이다.

비파골의 비파암은 효소왕을 놀라게 한 승려가 숨은 곳으로 생각되는 곳이고, 용장골로 내려가 용장리에 이르면 싸고 맛있는 갈비집들이 있어 시장기를 달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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